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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용이 가장 왕성하게 작품을 창작했던 1923년에서 1929년까지의 만 6년은 그의 일본 유학 시절과 거의 정확히 겹쳐지는데 이 시기는 그의 시력(詩歷)에서 매우 중요한 기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논문은 정지용 초기시의 주요 공간이자 시창작 활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공간이, 조선이 아닌 타국이면서 동시에 식민 제국이었던 일본이었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일본 체류 기간을 거침으로써 형성되었던 시적 특성을 살피고자 한다. 최남선과 이광수의 바다 시편들이 보여 주는 계몽의 어법과 단절하여, 근대적 개인의 새로운 상상체계를 언어화시킴으로써, 정지용은 1920년대 중후반 근대 지식인의 감성과 언어를 현실화시켰다. 해외여행과 기차 이동이라는 특수한 경험이, 유학생의 증대와 함께 지식인들 사이에서 점차 보편화되어 가고 있던 1920년대 중후반 조선의 근대적 상황은 정지용의 시들을 통해 구체화되기 시작하였다. 1926년에서 27년 사이 정지용의 창작 조건에서, 조선어는 절대적이고 불변하는 하나의 문자가 아니라 상대적이고 교환 가능한, 번역이 전제가 된다는 점에서 변화할 수도 있는 언어였다. 정지용은 일본 유학 시기의 창작 활동을 통해, 새로운 문물과 이방의 언어와 쏟아지는 근대 지식의 압도적인 세례를 경험했던 식민지 조선의 청년이 거쳐야 했던 정체성의 고민을 표현하였다. 이 정체성의 문제는 한편으로는 조선어의 언어적 정체성과도 연관된다. 그의 일본 유학 시절의 시들은, 조선의 근대와 조선어의 근대에 대한 여러 가지 문제들을 시사한다. 이 여러 가지 문제들에 뒤섞여 있는 혼돈을 언어화하면서 그는, ‘그 전날 부르던 아리랑조’를 되살려 자신의 리듬으로 만드는 일, 즉 조선의 바깥에 서서 새로이 조선어의 운율과 정서를 복기하면서 근대 조선어의 고유한 리듬을 찾는 과정 속에 자신의 창작 방향을 설정하게 된다.


Poetry of Chung Ji-young during his stay in Japan shows that traits innovation of perception and recognition made by enlargement of knowledge, new experiences, and geographical transfer. New and original images of Chung's poetry were leaded by his talent of observation. At same time, they were made by his several abroad experiences and his experience of international passenger ship that enabled him encountered multinational people. New knowledge and experience gave him the possibility of enlargement of imagination. Chung was under the shock given by strange scenery and he had to be confused by the relationship between Japan and Korea. His mother tongue was Korean, however, he was enforced to use Japanese and his major was English in a university. This condition was not simple and his poetry of this term showed the difficulty of living in a hybrid culture. Chung's poetry during his stay in Japan is meaningful because it reveals his confusion of originality and shows the procedure of his searching for it. He made endeavor to find his original form composed by Korean language and he refined his vocabulary without stopping. Chung's try of expression of various modern objects in his poetry goes with the pace of the job of description of his hometown and a motherland. He tried it through his mother tongue. After this period, multiplicity and hybrid of his poetry are faded away and the unity of Korean culture and language is located in that place. Produce of a poem like Baeknokdam could be accomplished by this process. Chung passed through a stranger outside Joseon and came back the place going forward the direction of "maintaining and developing nature, emotions and language of Kor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