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close

본 연구는 한국 한문산문의 통시적 전개에 있어서 중요한 분절점인 조선중기, 특히 선조광해 연간 문단의 동향과 성격을 둘러싼 기왕의 논의를 반성적으로 검토하고 그 실제적 구현 양상을 살펴본 것이다.이 시기 문단의 특징은 古文辭, 즉 복고적 문풍의 등장으로 요약된다. 尹根壽와 崔에 의해 창도되고 유몽인과 허균 등에 의해 재해석된 복고적 문풍은 당시 중국 문단을 풍미하던 前後七子의 문론과 흡사하다. 이들이 전후칠자에 주목하였음은 그들 자신의 독서편력과 평론 자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을 뿐더러 후대의 논평 역시 이러한 판단을 뒷받침하고 있다. 때문에 이들을 당송문 위주의 문체 특징을 보이는 조선전기 문장가들과 구별하여 하나의 유파로 묶고, 전후칠자 문장의 수용을 통해 의고파 또는 진한고문파가 성립되었다는 견해가 제기되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들 작가의 문장관과 작품 세계를 좀 더 면밀하게 살펴보면 전후칠자의 영향이 생각만큼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으며 유파의 성립을 인정할만한 공통분모도 존재하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조선중기는 진한 이전의 산문을 전범으로 삼는 복고적 문풍과 韓愈柳宗元歐陽修蘇軾 등 당송 제가의 산문을 법식으로 삼는 당송고문이 본격적으로 분기하는 시기로, 典範의 설정과 적용, 자득과 모의, 내용과 형식, 문체와 수사 등에 관한 관심을 촉발시킴으로써 산문에 대한 인식과 지평을 넓혔다. 이들은 註疏語錄體와 軟美한 館閣文으로 대표되던 조선전기의 문풍과 구별되는 기굴하고 험벽한 선진문의 체식을 구현함으로써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이들이 추구한 문체는 동시대의 문인인 許筠張維李植 등이 지향한 당송문 위주의 平易하고 直實한 문장과 확연히 다르다는 점에서 일종의 유파적 성격을 띠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정작 개별 작가 단위로 들어가 그 이론과 실천 양상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하나의 유파로 묶기에는 예외적인 면모들이 적지 않게 나타난다. 최립과 더불어 고문사를 창도했다고 평가받는 윤근수를 예로 들자면 李夢陽의 詩選集을 간행하고 王世貞의 史記纂을 본뜬 史纂의 간행을 추진하는 등 전후칠자의 작품에 심취했지만 실제 창작의 영역으로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반면 최립의 경우, 고문사를 가장 선명하게 실현한 작가로 평가받지만, 그 자신은 단 한 번도 전후칠자의 존재에 관해 언급한 적이 없었다. 그의 작품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반고와 한유 문장에서 연원한 奇異하고 深晦한 작풍도 나타나지만 정연한 논리와 명료한 행문을 특징으로 하는 구양수 산문의 영향 또한 아울러 확인할 수 있다. 유몽인의 경우, 이 시기의 문인 가운데 가장 분명하고 활발하게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그런데 그는 구양수와 소식 등 송대 고문가들의 문장이 지리하다고 비판하여 복고의 입장을 취했지만, 복고론의 주창자인 이몽양이나 왕세정 등에 대해서도 제가의 문장을 모의하고 표절한 데 불과하다고 혹평하였다. 허균의 경우, 유몽인과 달리 전후칠자를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그들의 작품을 탐독했다. 하지만 그는 명대를 대표하는 작가로서의 전후칠자에 관심을 기울였던 것이지 전후칠자의 복고론에 관심을 기울인 것은 아니었다.이처럼 당시 문단이 언뜻 보기에는 전후칠자의 복고적 문장관에 전적으로 힘입어 선진양한의 산문을 표준으로 하는 새로운 문체를 창출한 것 같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나름의 주체적 판단에 입각해 진한과 당송을 넘나드는 창조적이고 복합적인 문체를 구현하였던 것이다. 이는 곧 조선전기 이래로 누적된 글쓰기의 양태가 이 시기에 이르러 필연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단계에 접어들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당시의 문인들은 각각 자신의 사유와 취향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변용하였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문단 내부의 내재적 양상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중국의 문학사나 제한적인 논평 자료만을 근거로 복고적 문풍의 출현이 전후칠자의 수용으로부터 말미암은 것으로 규정한 기왕의 논의는 재론을 요한다.


A Study on the Trends and Characteristics of the Prose Style in the Mid-Chosun Period, Especially in the Reigns of Seonjo and Gwanghae-g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