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close

채만식은 근 50년 동안 풍자작가였으며, 세태소설가였고, 한때 카프에 몸담았던 경향작가로 평가받아 왔다. 그러나 채만식 스스로 ‘사도(邪道)’라 평가했던 ‘사소설’은 그러한 평가를 무색하게 하는 독자적 창작방법을 구현하고 있다. 특유의 양식적 혼종성과 사적 경험 기록에 의지함으로써 세태풍자적 소설들과는 전혀 다른 세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의 사소설은 경험기록의 방법을 채택하고 있으며, 이는 거대한 현실에 대한 생활적 은유로 해석된다. 군국주의로 인한 협소한 표현 공간에서 개인적 경험을 모사한 은유는 소극적이지만 나름의 사회적 역할을 담지할 수 있었던 방법이었다.경험기록적 ‘사소설’은 세태풍자와 함께 그의 작품세계를 드러내는 두 가지 창작방법 중 하나였다. <세길로>를 비롯한 다수의 일인칭 소설이 그러한 분류에 해당하고 세태소설이 다수를 이루던 1930년대의 경우에는 숱한 잡문을 통해 이 방법론을 고수하고 있다. 채만식이 이러한 창작방법을 전면에 내세워 ‘사소설’이라는 명칭을 부여하는 데 이르지만, 최서해를 위시해 1920년대 중반 조선문단 등을 통해 등단한 작가들의 대부분이 이 방법론에 기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이광수 등 초기 근대문학론의 제창자들로부터 이어진 이념적 층위의 소설 개념과 매체를 통해 경험과 사실을 기록하는 방법을 체득한 경험적 층위의 소설 개념이 분열되어 공존하고 있었던 식민지시기의 특성에 기인한 창작방법이었다. 따라서 채만식의 ‘사소설’ 또는 기록에 바탕을 둔 창작방법은 ‘소설의 정도가 아니’라는 관념이 채만식을 지배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창작의 초기부터 이 방법을 지속해왔으며, 그의 작품 세계를 떠받치는 두 개의 기둥 중 하나였다고 할 수 있다.


Chae Man-sik's private novel based on experience was the one of his writing methods with a satire on social conditions. As well Segillo, many first person novels could be included in that group. And in 1930s when many writers wrote social novels, he stuck to this method in his miscellaneous writings. He made this method stand out and called it a private novel. But including Choi Seo-hae, most of writers who made their debut as a man of letters through Chosunmundan used this method. This phenomenon was a writing method based on the peculiarity of colony period. In that times through mass media experiential novel concept was acquired and conceptual novel concept was continued from creators of early modern literary theory including Lee Kwang-soo. These two concepts coexisted in that times. So we can infer that Chae Man-sik's writing method based on private novels or records was continued from early writings although he thought those kinds of novels were not the right track, and the writing method was the one of two posts supporting his wor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