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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사우명행록과 무오당적에 나타난 초기 사림파의 형상을 살펴보려는 한 시도이다. 인간은 자신이 바라는 자신의 상을 중심으로 행동한다. 따라서 초기 사림파가 자기 자신을 어떤 사람으로 이해했는가는 아주 중요한 문제이다. 특히 성종 말년에 작성된 사우명행록과 선조 말년에 작성된 무오당적은 100년의 시차가 존재하며 그 사이 사림파의 개혁운동은 완결되었다. 이들의 속에 나타난 자기 형상의 차이를 지적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사우명행록은 성종 말년 비판적 지식인 남효온이 자신이 존경하던 스승과 벗들의 이름과 그들의 존경할만한 행적을 쓴 것이다. 여기에 수록된 인물들은 남효온, 김종직, 강응정이라는 세 가지 구심점을 갖는다. 쉽게 말해 비판적 지식인, 양심적 관료, 개혁적 성균관 유생이라는 세 가지 구심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셋 중 지도자격이었던 양심적 관료인 김종직과 상당히 껄끄러운 관계에 있는 상태에서 사우명행록은 지어졌다.사우명행록의 이러한 세 가지 구심점은 동한 시대 당고의 화 시기 태학생과 양심적 관료가 결합하여 청의라 불리던 과격한 의론을 무기로 환관 내지 외척과 대결했다가 패배했던 모습을 연상시킨다. 실제로 사우명행록이 지어질 당시에 이미 동한 시대 청의에 대한 일정한 인식이 있었으며 중종시기 김정국은 아예 당인들의 명단 곧 당적이란 말로 사화에 희생당한 사람들을 부르고 있다. 유성룡의 무오당적이란 말도 여기에서 기인한 것이다.사우명행록 이후 무려 100여년이 지나 유성룡에 의해 씌어진 무오당적은 사림파 운동에 대한 이론적 총결산의 성격을 갖는다. 무오당적 자체가 무오사화 때 희생당한 사람들의 명단인 만큼 당연한 일이겠지만 무오당적은 맑고 깨끗한 인격을 가진 순교자의 명단이라는 측면이 강하다. 여기에는 개혁가, 방외인, 구도자의 성격을 가진 인물들이 등장한다. 여기에서 사우명행록에서 무오당적으로 발전해 나간 사림파의 자기형상의 모습이 뚜렷하게 보인다고 할 것이다.


Self-configuration of the first stage of Sarim-p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