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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청시대 화북의 삼림문제와 永定河 治水 해하수계는 명청시대 화북평원 하천생태계의 주요 부분을 이루고 있다. 해하수계가 위치한 기보지역은 원대 이래 왕조의 정치, 군사, 문화의 중심지였다. 명대 북경에 인구가 크게 집중되고 사회경제의 급속한 발전으로 목재 수요가 급증하면서 해하수계 상류의 태행·연산 일대의 삼림식생이 크게 파괴되어 갔고, 이는 해하수계 하천이 관류하는 화북평원 일대에 상습적인 수해를 일으키는 근원이 되었다. 태행·연산 일대의 삼림이 크게 파괴된 것은 명초 북경 奠都로 많은 소비인구가 집중된 것과 관련이 깊다. 북경의 건설, 황실과 관민의 대량의 시탄 소비, 명 중기 이후 북경의 사치풍조 만연으로 인한 건축 붐과 호화로운 요식문화의 성행 등으로 목재·시탄 수요가 폭증하였고, 전쟁의 파괴와 개간이주 등으로 일대 삼림은 궤멸적 파괴를 입기 시작하였다. 북경 인근 산간의 목재가 고갈되면서 명 후기부터 석탄이 대체연료로서 광범하게 보급되기 시작하였다. 명청시대 북경에서 석탄 사용이 일반화되기 시작하였지만, 청말까지 여전히 취사·난방용 연료의 주류는 시탄이었다. 영정하는 해하수계에서 水患이 가장 심한 하천 중 하나였다. 화북의 대표적인 渾河로 하도 변화가 심한 데다가 제방의 궤결, 범람이 일어나면 수해가 직접 북경에 영향을 미쳤다. 그 때문에 영정하는 북경에 수도를 둔 원·명·청 역대 왕조의 중앙 차원의 집중적인 치수의 대상이 되었다. 원명 이래 중앙 주도의 영정하 치수가 여러 차례 진행되었으나, 근본적인 치리라기 보다는 수재 발생에 즉해서 수리전문가를 파견하는 등 임기응변적 성격이 강했다. 더구나 준설, 제방공사 등의 하공은 북경에 직접 피해를 입히는 노구교 상류지역이 주 대상이었을 뿐, 그 하류는 거의 방치하였다. 본격적이고 전반적인 영정하 하공은 강희37년에 이루어졌고, 이 때 황제의 賜名으로 종래 無定河 대신 永定河 명칭을 얻었다. 이후 여러 차례의 보강 공사로 하도가 어느 정도 안정되었으며, 영정하 치리를 위한 상설 기구도 마련되었다. 그러나 영정하 수재의 원인인 ‘渾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한 하공의 성과도 오래 지속되지 못하였다. 渾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수원지 산악지대의 파괴된 삼림식생을 복원하는 일이 중요하나, 인구의 급증에 따라 삼림 파괴는 더욱 가속될 뿐이었다. 여기에 더하여, 청 후반기로 들면서 정세의 불안, 재정 궁핍, 전반적인 이치의 이완 등으로 영정하 수재의 중요 지점에 대해서 미봉적 조처를 취하는 정도로, 그 하류는 대부분 방치하였다.


海河水系是華北平原地區河川生態系的主要部分。海河水系處于畿輔地區, 該地區是元代以來王朝的政治、軍事、文化中心。明代以來海河水系上游的太行、燕山一帶的森林植皮被嚴重地破壞, 其結果河川貫流的華北平原一帶受到了嚴重的水害。 太行、燕山一帶森林的嚴重破壞的現象是與明初北京奠都以後首都、畿輔地區擁有巨大的所費人口有密切相關。明淸以來由于北京的營建、奢侈風潮造成的建築熱潮、浪費的料理文化的盛行、皇室及官民的大量柴炭消費、戰爭破壞及毁林開荒等, 這地區森林遭到了潰滅性的破壞。圍繞北京的山區森林被嚴重地破壞和枯渴, 招來木材、柴炭資源不足。明後期以來, 隨着森林資源枯渴, 木材價騰貴, 作爲代替柴炭的煤炭開始在北京及華北人民生活中廣泛地使用。但是明淸時代北京人民消費的燃料仍以柴炭占優勢, 煤炭占地位比較輕。 永定河在海河水系發生水患的最大根源, 河道流下無常, 而有‘無定河’之稱, 在華北最難治的濁流, ‘渾河’、‘小黃河’由此得名。尤其永定河水災徑直影響到首都。由于永定河屢次爲患, 洪水涌入北京城, 引起歷朝統治者的高度重視。元明時期多次組織治河工程, 然而其河工基本上未能免因機應變性和地方局地性。尤其永定河河工主要施行在盧溝橋以上, 給北京城水災的區間。永定河全區間的河工, 到淸康熙37年才最初實行。永定河上下游全河道上築起了堅强的堤防。這次河工是永定河治理歷史上最初而全局面性的河工。從來橫行難治的無定河, 經過這次河工安定地流下來, 從來被稱無定河成爲欽定賜名的‘永定河’。 永定河的發生水災由于其河水的渾濁, 其渾水主要由于上游山區的森林植皮的毁壞所致。上游山區森林的破壞和土沙流失情況沒有根本改善, 而水文環境沒有改善的環境之下, 永定河水災發生也根本沒有解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