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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식민지시대 대표적인 비평가인 임화의 메타비평을 통시적으로 검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임화는 누구보다도 뚜렷한 비평적 자의식을 지닌 비평가였다. 그는 비평의 본질과 성격, 존재방식에 대한 수많은 평문(메타비평)을 남겼다. 그는 비평적 위기가 닥칠 때마다 비평의 존재방식에 대한 근본적 성찰을 전개한 비평가이다. 그러한 메타비평을 통해 임화는 비평에 대한 사유를 인상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임화는 1930년대 중반까지는 마르크스주의 비평을 분명하게 고수했다. 그러나 1930년대 후반부터 임화는 작품에 종속된 비평에 대한 비판을 전개하면서 비평의 사회성과 정치성을 강조했다. 1940년 무렵부터 정세가 악화되면서 일본제국주의의 내선일체 사상과 대동아공영권이 확산되자, 임화는 비평의 독립성과 예술의 자율성에 대한 각별한 관심을 보여준다. 임화의 이러한 태도는 당시 노골적으로 확산되고 있던 일본 제국주의파시즘에 대한 간접적인 저항에 해당된다. 이와 연관하여 임화의 ‘창조적 비평’은 전면적인 억압기나 파시즘이 활개 치는 시기에 지배이데올로기에 대한 저항이 어떤 방식으로 가능한가 하는 점을 보여주는 일종의 시금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임화의 계몽주의적 비평은 해방직후 다시 적극적으로 분출했다. 그러나 그의 비평적 사유는 그의 정치적 죽음으로 인해 더 이상 지속되지 못했다. 이러한 점은 한국현대비평사의 최대의 아이러니이자 불행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The purpose of this thesis is to study Meta-Criticism of Imwha(林和), a representative critic of Korean Colonial Period. Imwha was a critic who had more critical self-consciousness than anyone else. He wrote many critic essays about the essence and characteristics of criticism. His thoughts on criticism are shown impressively in those articles and writings. Apparently, Imwha held on to Marxist Criticism until the mid 1930s. But, since the late 1930s, he developed his critical view on the criticism which was subordinated to literature works and emphasized the historical and political features of criticism. Since 1940, Imwha started to show his strong interest in the independence of criticism and autonomy of arts. This attitude can be considered as an indirect resistance against the Fascism of Japanese Imperialism which was being spreaded openly. He developed actively his enlightenment criticism again since the liberation of Korea. But his critical thoughts couldn’t be developed more because of his political death. This is one of the worst misfortune in the history of Korean Modern criticis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