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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승과 변천개항전후의 천진 토지 계약과 교역본 논문은 천진 당안관에 소장되어 있는 토지 가옥의 문서 자료를 정리하고, 토지문서 자료에 기록되어있는 토지매매세와 가격 등을 통하여 개항전후 시기 천진에서의 토지의 교역방법, 토지 가격, 시장, 교역구역 및 규모 등의 변화와 발전을 분석하였다. 또한 개항이 천진의 근대 토지 교역에 대해 끼치는 거대한 영향을 상세히 설명하고, 이를 통해 천진 도시화의 과정에서 전통과 현대의 충돌과 융합을 이해하고자 하였다. 근래 전통 중국의 근대화에 대한 연구가 진전되면서 오랫동안 관심을 끌어왔던 “충격과 반응”의 방식을 탈피하여, 내재적 발전을 중시하는 중국 중심의 중국사에 대한 이론이 관심을 끌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추세는 이미 학자들의 지지를 받으며 중국근대사의 연구에서 주류가 되었다. 하지만 전통중국의 근대화를 설명함에 있어서 단지 “충격과 반응” 방식이나 “중국중심관”을 간단하게 적용해서는 안 되고, 양자 간의 유기적인 결합으로 보아야 하고, 이것은 외인과 내인이 서로 조화를 이루는 상태에서 생성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개항 전후의 천진 토지계약과 교역방식의 변화를 통해서 바로 이러한 것을 설명하고자 한다. 토지는 재부의 근본이고, 도시와 마찬가지로 토지교역은 일종의 상업행위로서 토지사유제도가 출현한 후 나타난 일종의 계약관계이다. 일찍이 진한 시기에 전통적인 부동산 계약이 이루어지고, 남조의 동진시기에는 부동산계약에 대해 估稅를 징수하기 시작하였다. 인쇄술이 보급되면서 북송 때에는 印契와 稅契제도가 정식으로 만들어졌고, 관청의 통일적인 계약양식인 “官契”와 민간에서 사용된 “草契”가 출현하였다. 이후 전통계약 문서의 종류는 점점 번다해졌다. 그리고 교역형식은 매매, 전당, 조전 등이 있고, 매매 대상에서도 밭, 토지, 가옥, 정원 매매 계약문서 등 형식과 내용이 다른 관련 문서가 갖추어 지면서 계약은 점점 발전되고, 이것은 불가피하게 상품경제하에서 중요한 내용이 되었다. 통상항구는 서양열강과의 전쟁이후 강제적으로 개항되었고, 조계는 열강침략의 직접적인 산물이다. 제1차 아편 전쟁 이후 영국은 불평등 조약을 통해 가장 먼저 상해에 조계를 건립하였고, 천진 조계의 획분도 외국 군대의 적나라한 점령 하에서 진행되었다. 조계는 중국에 대한 군사위협, 정치통제, 경제약탈, 문화침투의 기지가 되었기에, 침략이라는 본질은 분명하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천진의 도시근대화를 촉진시킨 계기가 된 것은 분명하다. 특히 토지계약과 교역에 있어서 서양의 새로운 계약형식과 방식이 도입되어 부분적으로 전통 계약의 격식과 이념을 개변시키거나 영향을 끼쳤다. 개항 후 근대 천진의 토지계약과 교역은 크게 변하였다. 계약의 형식에서 내용까지, 토지거래의 제도에서 운영, 거래의 구역과 규모까지 봉건적인 토지제도와 계약제도에서는 불가능한 비약적인 변화가 나타났다. 중국 전통의 토지거래에 있어서 내재적 발전의 메커니즘과 환경을 부인하지 않는다. 동시에 외래의 제도가 전통과 관습에 대하여 촉매작용을 하고 영향을 끼친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이러한 영향은 바로 개항이 가져온 충격의 일부분이고, 천진의 토지거래는 단시간 내에 봉건적인 장벽을 뛰어넘었고, 자본주의 상품화의 격랑에 진입하면서 토지 상품화의 원시축적과정이 완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