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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송 황릉 新道에 설치된 石像을 통해 본 북송과 주변지역의 문화교류 북송황릉의 능원 내에 석상을 설치한 것은 기본적으로 당나라 능원제도를 계승한 내용으로 흔히 남쪽 신문 외부의 신도 양측에 두었다. 당대 황릉의 석조각상의 숫자와 배열된 위치가 정식이 없었던 것과는 달리 북송 황제릉의 석조각상의 숫자는 완전히 같으며 배열순서가 규칙적이고 계획적이어서 제도적인 면이 아주 강하였다. 능원 상궁의 네 신문의 외부에 두었던 한쌍의 석사자 이외의 나머지 석조각상은 모두 무덤 앞쪽에 배치하였으며 신도의 동, 서 양측에 집중적으로 배치하였다. 동시에 석조각상과 석조각상의 거리는 아주 가까워서 능원 전후 간의 거리를 크게 단축시켜 전체 능원을 타이트하게 만들고 있다. 북송 황릉의 여러 제릉 상궁에는 석조각상이 모두 64개가 설치되었으며 남쪽에서 북쪽으로 차례로 망주 2개, 코끼리와 코끼리 마부 각각 2, 서수 2, 각서 2, 말 4, 마부 8, 석호 4, 석양 4, 번부객사 6, 무장 4, 문신 4, 동서남북 네 신문 외부에도 또한 두 마리의 문을 지키는 석사자가 있으며 남쪽 신문 석사자의 남쪽에도 한쌍의 무사, 남쪽 신문 내부에도 내시 2, 궁인 2인이 있다. 능대 앞쪽에도 두 개의 석각에 석마가 있다. 송대 능의 석각은 수량면에서 당대 능을 초월할 뿐만 아니라(건릉은 제외), 몇몇 예가 증가하였다. 또한 종류면에서도 변화와 창조가 있다. 망주, 벌마, 마부, 문을 지키는 사자, 문무관리는 당릉에서 고유한 것 이외에 당릉 석조상 중 위치가 고정되어 있지 않았던 “番酋” 혹은 “番民” 형상은 송릉에서는 의장행렬 내부의 6구 객사상을 이루며 각서가 날개가 있는 말을 대신하며 고부조 타조는 서수 석병으로 변화된다. 동시에 코끼리와 코끼리 마부가 새로이 증가되었으며, 벽사의 호랑이와 양, 궁인, 수호신문의 문사, 말 등이 이용되었다. 배열순서를 통해, 서수, 각서, 벽사의 호랑이와 양 이외에 코끼리, 코끼리 마부, 말과 마부, 객사, 무관, 문관등은 기본적으로 황제생전에 출행한 의장행렬과 유사하다. 그러므로 송릉 석조상의 변화와 창조는 당릉과 비교하여 더욱 현실생활속의 궁정의장과 가까워졌다고 말할 수 있다. 종류가 풍부한 송릉의 석조상 중에서 중원의 한족 문화 중 고래로 숭상된 문화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또한 주변지역의 문화요소도 포함하고 있는데 이는 송왕조와 주변지역의 분화교류를 시사해 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망주, 코끼리와 코끼리 마부, 서금, 의마와 마부, 호랑이, 양, 객사, 문의 사자 등이다. 이러한 석조각상의 설립은 이전시기 무덤 의장제도의 계승에 대해 당시 사회문화와 생활상황을 반영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