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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唐代) 소그드인과 “동아시아해” 교류 중국의 당대(唐代)에 상정되는 교역권에는, 다음과 같은 2가지의 것이 있다. 하나는 당, 발해, 신라, 일본을 묶는 동아시아 해역의 교역권이고, 다른 하나는 서방계 민족의 왕래를 통해 페르시아 문화가 유입된 내륙 아시아 루트에 의한 육상의 교역권이다. 본고는 지금까지의 연구에서는 공백이라고 할 수 있는 이 2개의 교역권을 잇는 접점이 어떠한지를 찾아보려고 한다. 현재, 한반도와 일본에 남아있는 문물은, 동아시아해를 통해 빈번한 교류가 있던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문물 가운데는 소그드인의 영향을 볼 수 있는 것도 많다. 또, 그들 소그드인들이 일본에까지 방문하고 있었다고 하는 사료도 적지만 남아 있다. 이것들로부터, 당시 , 동아시아해의 교류가 내륙 아시아의 소그드인의 활동과도 연동하고 있었음을 엿볼 수 있다. 그래서 본고는, 당, 특히 번진체제하의 후반기에 주목하여 소그드인이 어떠한 모습을 취하고 있었는지를 살펴 보았다. 오연섭(五延燮)의 「당방진연표(唐方鎭年表)」로, 소그드인 절도사를 조사하면, 합계 30명, 말해 55명의 많은 소그드인이 절도사로 취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들 소그드인이, 번진체제하의 지방 행정에 깊게 관련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소그드인 절도사들이 동아시아해의 교섭에 관련되었음을 보여주는 사료가 남아 있다. 그것은 일본의 「유취삼대격(類聚三代格)」의 헤이안(平安) 초기의 천장(天長) 5년(828) 정월 2일의 태정관부(太政官符)이며, 거기에는 발해사가 「일기일항(一紀一項)」의 원칙에 반해 일본 방문했을 때의 모습이 기록되고 있다. 이 발해사가 연기(年期)에 반해 일본을 방문한 이유에 대해 “為言大唐淄青節度康志曀(睦)交通之事”라고 기록되고 있다. 여기서, 소그드인 절도사 야스시 무츠미(康志睦)가, 당·발해·일본의 교섭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육상의 교역과 동아시아해의 교역, 또 그 접점에도 소그드인이 존재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