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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중기 신라인 약탈 매매 문제 당과 신라 관계사 연구 중에는 당 중기 신라인 약탈 매매 문제를 다룬 몇몇 국내외 학자들의 성과가 있다. 이 문제는 여러 가지 면으로 아직 불명료한 부분이 남아 있으므로 보다 깊이 있는 검토를 할 필요가 있다. 당시 신라인을 노비로 삼는 현상은 중국 연해 일대에 국한되지 않았으며, 많은 사람들이 잡혀 불법적으로 상인들에게 판매되어 중국 내륙에까지 이르렀을 가능성도 있다. 신라인들이 형성한 일부 취락은 이 사람들의 매매와 관계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 신라 통일 전의 당나라 초기에는 한반도 출신 노비의 대부분은 고구려출신이었다. 당대에 신라인을 노비로 삼는 현상은 당나라 초기 요동 공격 이후 나타나기 시작하였고, 신라 양민을 약탈 매매하여 노비로 삼는 것은 주로 당 중기 이후였다. 당 전기의 노비 來源은 파산한 농민이 몰락해 전락하였거나 혹은 옛날부터 노비였던 사람들이었고, 관아에 소속된 노비들은 주로 죄를 받아서 노비가 되었거나 전쟁에서 포로가 된 노비들이었다. 그러나 당 후기에는 이와 같은 왕조 차원의 노비 약탈 현상은 감소하고 개인 지주, 관료, 상인들이 연변의 주현과 소수민족 및 국가의 인민을 약탈 매매하여 노비로 삼는 현상이 크게 증가하였다. 이후 장보고는 1만 명으로 바닷길의 요충인 청해진을 지켰고 이에 따라 당 조정은 재차 노비 약탈 매매를 금지하는 조칙을 반포함으로써 신라인을 약탈 매매하는 현상이 줄어들었다. 요컨대 당대 중기 이후 신라인 약탈 매매 문제를 언급하려고 할 경우, 이 문제를 단편적으로 살펴서는 안 되며 당대 사회경제적 제반 현상이라는 큰 배경 하에서 이 문제를 파악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