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close

조선총독부는 일본 정부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지만 총독부의 관리들은 조선을 효율적으로 지배해야 일본에서 파견된 자신들의 입지가 확보된다. 따라서 성공적으로 식민지를 지배하기 위해서 일정한 정도의 자율적인 정책을 시행할 수밖에 없다. 조선총독부는 일본 재계의 일부와 이미 조선에 진출해 있던 일본인들의 요구에 부응하는 방식으로 자율성을 발휘하였다. 심지어는 효율적인 식민지지배를 위한 것이라면 조선인들의 요구까지도 반영하는 형태로 정책을 수행하였다. 경성방직도 자신이 만든 직물을 팔아야 하는 ‘시장’과 자신을 통제하고 지배하는 정책주체인 ‘조선총독부’라는 환경 속에서 자본축적에 성공해야만 했다. 정책주체인 조선총독부의 정책을 경성방직이 어떻게 활용하고 편승하면서 자본축적에 성공하였는가를 살펴본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경성방직은 면직물에 대한 이입세가 유지되어 커다란 이익을 보았다. 하지만 이입세를 유지한 것이 경성방직을 지원하기 위한 조선총독부의 정책은 아니었다. 경성방직은 일본 제국의 관세철폐 움직임과 신생업체로서 판매가 곤란했던 시장상황에 직면하였다. 이런 시장상황을 극복하기 위하여 경성방직은 회사 내부인사들을 비롯하여 동아일보와 같은 언론기관까지 동원하여 이입세를 유지시키기 위해서 노력했다. 이런 노력은 직물과 주류관련 이입세가 세입에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쉽사리 이입세를 폐지하지 못했던 조선총독부의 입장과 맞아떨어지면서 직물의 이입세를 유지시킬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던 것이다. 둘째, 경성방직은 조선총독부의 보조금을 받아서 설립 초기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보조금도 경성방직을 지원하고 육성하기 위한 정책은 아니었다. 당시 동일한 제품을 생산하는 조선방직이 거액의 보조금을 받고 있던 시장상황 속에서 경쟁회사와 동일하게 취급해 달라는 요구를 제기함으로써 보조금을 확보할 수 있었다. 경성방직의 이런 움직임은 이미 약속된 조선방직에 대한 지원과 생활필수품인 면직물의 안정적인 생산이 필요했던 조선총독부의 입장을 활용한 것이다.– 267 – 셋째, 경성방직은 중일전쟁 이후 특혜적 성격의 대규모 정책금융을 통해 사업을 확장하고 해외로 진출하였다. 경성방직은 1930년대에 들어서면 일본 면직물가격의 하락과 조선으로의 유입, 그리고 일본내에서의 경쟁과 규제를 회피하고자 하는 대규모 면방직자본의 진출로 시장에서 어려움에 직면하였다. 이런 상황 속에서 중일전쟁 이후의 경성방직은 조선총독부의 정책에 편승하여 대규모 차입을 통한 기업확장과 해외진출로 활로를 찾았다. 결론적으로 중일전쟁 이전에 경성방직은 생산과 판매의 어려움 속에서 경쟁업체가 조선총독부로부터 보조금을 지급받는 시장 상황에 직면하였다. 그리고 식민지의 효율적 지배와 이를 위한 생필품의 원활한 공급을 시도하고 있던 조선총독부라는 정책주체와도 마주쳤다. 이런 상황 속에서 경성방직은 적극적인 노력으로 이입세를 유지시키고 보조금을 확보함으로써 설립 초기의 어려움을 극복하였다. 그러나 1930년대에 들어서면 면직물시장에서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졌으며, 특히 중일전쟁 이후에는 조선총독부의 대륙침략정책이 본격화되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경성방직은 조선총독부의 정책에 동조하고 편승하면서 대규모 차입을 통한 급속한 자본축적에 성공하였다. 하지만 대부분의 조선인자본이 몰락해가는 시절에 정책주체인 조선총독부에 편승해 이룬 식민지 말기 경성방직의 성공은 정책주체의 몰락과 함께 사라질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성공’이었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