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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代의 經學은 크게 今文經學과 古文經學이라는 학문적 경향으로 대별되며, 두 학파 사이에 무수한 대립과 융합, 그리고 치열한 논쟁이 한대 경학의 역사를 대변한다. 두 학파 사이의 논쟁은 크게 4차에 걸쳐서 진행되었는데, 그 중 본 논문에서 다루는 제4차 금고문 논쟁은 이전의 논쟁과는 구별되는 독특한 성격을 띠고 있다.앞선 세 차례의 경학논쟁은 경세학적 경학의 역할이 강조되는 상황에서 현실 정치의 장에서 벌어진 정치적 이념 논쟁의 성격이 강하며, 금문경학과 고문경학 특히 公羊學과 左氏學의 학관 설립이라는 학파의 주도권 문제와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었다. 그리고 논쟁의 배후에는 항상 국가 권력이 자리하여 논쟁을 주도함으로써 경학이라는 권력의 기반을 장악하여 국가의 지배 이념을 정당화하려는 강한 정치적 색채를 띠었다. 이와는 달리 何休와 鄭玄 사이에 벌어진 4차 금고문논쟁은 이전의 논쟁과는 그 성격을 완전히 달리할 뿐만 아니라 경학 이론의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논쟁은 현실 정치와는 이미 단절된 학술계 내부의 논쟁이며, 경학의 내실화를 꾀하는 과정에서 촉발된 순수 이론 논쟁이라는 점에서 이전의 논쟁과는 크게 구별될 뿐만 아니라 그 학술적 가치 또한 크다고 할 수 있다. 이 논쟁은 경학사적인 측면에서 경학의 성격 변화, 즉 현실 정치와의 불가분의 관계 속에서 정치 이념의 생산자 내지 담지자의 역할을 수행했던 경학이 정치와는 완전한 단절을 선언하고, 실증적이고 고증학적인 경학으로 방향을 전환한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그 뿐만 아니라 이 논쟁은 공양학의 집대성자인 하휴와 금고문학의 통합을 이룬 정현의 학문적 입장과 사상적 경향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하휴와 정현의 논쟁은 외형적으로는 금문 경학과 고문 경학의 대립이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내용면에서는 경학 발전의 새로운 출로를 개척함으로써 경학사에서의 획기적인 사건으로 평가될 수 있다. 논쟁 이후 공양학은 하휴에 의해 일관된 체계를 갖춘 이론을 형성함으로써 하나의 체계적인 학문 형태로 정착되었으며, 실증적이고 고증학적인 정현의 학문 태도는 경학 연구 방법의 기초적 모델을 제시했을 뿐만 아니라 경학의 내실화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다.


汉代的经学可分为今文经学和古文经学。两学派之间无数对立,融合和激烈的论争,象征着汉代经学的历史。两学派之间经过了四次主要论争,本文涉及的第四次今古文论争,它区别于前几次论争,具有独特的性质。 前面的三次经学论争强调经世学的经学作用,在现实的政治背景下具有政治的理念论证的性质。今文经学和古文经学,特别是公羊学和左氏学的学官设立这样的学派主导权问题,有直接的关联。何休和鄭玄之间发生的第四次今古文论争不但与前所述的性质完全不同,而且在经学的理论发展层面上具有极其重要的意义。 第四次论争是脱离现实政治的纯学术界内部的论争。在经学的内实化过程中,促发了纯粹的理论论争。这一特性不仅与前三次论争相区别,而且也具有极其重要的学术价值。不仅如此,这次论争集中体现了公羊学的集大成者何休和統合今古文學的鄭玄學問的立場和思想傾向。何休和鄭玄的论争表面上采取今文经学和古文经学对立的形式,但在内容上由于它开拓了经学发展的新出路,因此可评价其为经学史上具有重要影响的事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