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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의 목적은 근대라는 시간 속에서 티벳불교에 대한 중국불교의 수용태도를 밝히는 것이다. 중국불교는 순수하게 학문적인 목적만을 위해서, 티벳불교와 밀교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던 것일까. 그렇지 않다면, 어떤 계기로 티벳불교를 적극적으로 유입하게 되었을까. 당시 티벳과 중국의 관계는 군사적인 충돌로 인해 악화되었으며, 이로 인해 중화민국의 티벳 복속정책은 물리적인 측면만으로 해결될 수 없는 입장이었다. 한족(漢族) 중심적인 중화민국의 권역으로 티벳을 위시한 소수민족을 결합시키기 위해서 불교는 가장 효력적인 통치수단이었다. 이러한 정치적인 조건들로 인해, 티벳불교는 주목받게 된다. 태허(太虛)는 중국불교의 개혁을 위해서 티벳불교를 참고로 하였다. 그리고 불교를 통해 다섯 민족을 아우르는 중화사상에 적극적으로 협조할 수밖에 없었으며, 종교와 정치권력의 결합으로 인해 중국불교는 쇄신의 대상에서 개혁의 주체로 거듭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불교학적인 방법론에서 티벳불교가 근대에 대두되었다는 점, 그리고 일반 대중들에게 밀교가 유포되었다는 점은 서양의 불교학적인 방법론과 서양의 종교에 대항하기 위한 민족의식의 발로였다. 그리고 구양점(歐陽漸)의 지나내학원(支那內學院)은 근대적인 불교학의 방법론을 티벳문헌과 한역(漢譯)의 대조를 통해 1925년에 시도하였다는 점은 그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석대용(釋大勇)의 장문학원(藏文學院)은 유장학법단(留藏學法團)을 구성해서 일본의 동밀(東密)과 티벳의 밀교[藏密]를 수용해 중국의 밀교를 부흥시키기 위한 조직적인 시도였다는 점에서 중국불교사에서 그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AbstractThe Background and Progress of Research on Tibetan Buddhism in Modern Chi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