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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宋부터 南宋에 걸쳐서 中에서 木版印刷된 宋版一切經은 中의 새로운 文化로서 佛傳法과 함께 다량으로 日本에 傳하여, 그 遺品이 日本의 諸寺에 所되어 있다. 그 중에서 京都의 醍寺에는 渡唐僧으로서 알려져 있는 俊乘房重源이 中의 古寺에서 하여 1195年(建久 6年)에 醍寺에 奉納한 記이 있는 宋版一切經이 6096帖 現存한다. 이 東寺版에는 北宋의 元豊 2年(1079)부터 南宋의 乾道 9年(1173)에 걸친 刊記가 있으며, 紹 2年(1191)의 重雕刊記를 갖고 있는 것도 있다. 이 宋版一切經에 角筆 記入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容은 日本의 訓點과는 다르게, 韓의 角筆에 의한 梵唄譜나 合符號가 角筆의 注解漢字와 함께 표시되어 있으며, 특히 點吐와 비슷한 角筆의 點複點이 보인다. 이 點複點의 形式은 韓의 點吐와 매우 유사하다. 그러나 韓의 點吐에서 사용한 線이나 線과 點의 조합의 符號가 없으며, 返符도 없다. 또한 韓의 點吐는 漢字의 周邊 등 二十五箇所를 사용하여 助詞助動詞 등을 나타내고 있지만, 宋版一切經의 角筆點은 純하다. 이 點複點의 機能은 解中이지만, 體言이나 用言, 連用接 등의 文法機能을 나타내고 있다. 形式이 純한 것은 助詞助動詞 등을 나타낼 必要가 없는 言語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와 같은 차이점은 있지만, 點과 複點이 형태상에서 매우 흡사한 것은 우연히 비슷하게 되었다고도 생각할 수 있지만, 梵唄譜나 合符까지 一致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宋版一切經의 角筆點과 韓의 點吐와의 사이에 影響係가 있었을 可能性이 있다. 中을 포함한 東아시아의 言語文化의 傳流와 變容의 問題로서 생각할 必要가 있다.


北宋から南宋にかけて中国で木版印刷された宋版一切経は、中国の新しい文化として仏教伝法に伴い、多くが日本に伝来し、その遺品が 日本の諸寺に所蔵されている。その中で京都の醍醐寺には、渡唐僧とし て知られる俊乗房重源が中国の古寺から将来して、一一九五年(建久六 年)に醍醐寺に奉納した記録のある宋版一切経が六〇九六帖現存する。その東禅寺版には北宋の元豊二年(一〇七九)から南宋の乾道九年(一一七三)にかけての刊記があり、紹煕二年(一一九一)の重雕刊記を持つものもある。この宋版一切経に角筆の記入のあることが分かった。その内容は、日本の訓点とは異なり、韓国の角筆による梵唄譜や合符号が、角筆の注解漢字と共に用いられ、特に点吐に似た角筆の単点・複点が見られる。この単点・複点の形式は、韓国の点吐に酷似する。しかし、韓国の点吐で用いた「線」や「線と点の組み合わせ」の符号が無く、返読符も無い。また韓国の点吐は漢字の周辺など二十五箇所を使って助詞・助動詞などを表しているが、宋版一切経の角筆点は単純である。この単点・複点の機能は解読中であるが、体言や用言、連用接続などの文法機能を表している。形式が単純なのは助詞・助動詞などを表す必要のない言語に基いているからであろう。 このような相違はあるが、単点と複点とが形の上で酷似することは、偶然似ることになったとも考えられるものの、梵唄譜や合符まで一致していることに併せ考えると、宋版一切経の角筆点と韓国の点吐との間に影響関係のあった可能性がある。中国を含めた東アジアの言語文化の伝流と変容の問題として考える必要があ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