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close

고려시대 詔書에 관한 연구는 日淺하였고, 크게 두 방향으로 이루어져 왔다. 즉 조서라는 문서에 관한 書誌學的 연구와 조서의 내용을 분석하며 통치구조 및 정치사상을 규명하려는 政治史的 연구가 그것이다. 前者는 古文書의 형식과 기능에 초점을 맞춰 조서를 분석하고 있다. 조서의 문장구조를 분석하고, 조서의 유형을 분류하며 서지학적 연구의 틀을 제시하였다. 後者는 최근에야 그 연구의 단초를 열고 있다. 詔書와 封事를 둘러싼 정치변동과정, 遺詔를 통해본 고려의 왕위교체과정, 조서와 그 審議 官府의 관계 속에 나타난 王命의 位相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고려 조서에 대한 연구는 양이나 질의 면에서 초보적 단계에 머무르고 있다고 하여도 과언은 아니다. 특히 金石文과 文獻資料 등에 전하는 고려시대 조서 전반에 대한 현황 파악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았다. 이에 본고는 현재 전하는 고려 전기(太祖~毅宗) 모든 조서의 현황을 파악하고, 이를 토대로 본격적인 분석 작업을 하기 위해 王代別․主題別 분류를 시도하였다. 여기에는 금석문과 문헌자료의 두 가지 史料를 조사하였다. 그 결과 고려 전기의 전체 조서 현황은 금석문 撰․書의 사례가 35종, 문헌자료(『高麗史』․『高麗史節要』)에 전하는 사례가 총 629회로 나타났다. 그런데 금석문에 전하는 조서는 대부분이 高僧 碑文의 撰進과 관련한 것이었다. 따라서 조서 연구의 핵심은 문헌자료에 치중될 수밖에 없었다. 본고는 문헌자료에 전하는 총 629회의 조서를 太祖에서 毅宗까지 왕대별․주제별로 분류하였다. 왕대별 분류의 결과, 文宗 조서가 가장 많은 176회였다. 뒤이어서 仁宗 85회, 肅宗 68회, 睿宗 55회, 顯宗 49회, 成宗 47회의 순으로 나타났다. 또한 총 629회의 조서를 다시 <천재지변>, <관리>, <의례>, <외교․국방>, <민간>, <문화>의 여섯 가지 주제별로 분류하였다. 그 결과 <관리> 250회, <의례> 138회, <민간> 96회, <천재지변> 70회, <외교․국방> 42회, <문화> 33회의 순이었다. 이 중 <관리>와 <의례>가 388회로 2/3를 차지하였다. 일반 민간과 거의 상관없는 지배층 내에서 이루어지는 내용의 조서가 상당수 수록된 것이다. 이 사실은 조서가 갖는 상징성을 잘 대변해준다. 즉 국왕의 통치행위 일환으로 반포되는 조서는 주로 관리 및 왕실 등 지배층 내부의 문제와 그 儀禮가 주를 이루었다. 따라서 지배층 내의 위계질서 및 통치구조를 자리 잡아 가는 과정에서 조서의 활용도가 컸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고려 조서에 관한 기존의 연구는 古文書 중심의 형식 분석을 이루는 書誌學的 연구가 주류였다. 그 외에 조서 작성 官府 및 官員과 반포 절차 등에 대한 연구가 전부였다. 조서 전반에 대한 내용 분석과 동일 주제의 조서에 대한 通時代的 고찰 등은 이제껏 이루고 있지 못했다. 심지어는 문헌자료 및 금석문 撰․書 등에 보이는 전체 조서의 현황 파악마저 未備되어 있었다. 본고는 이에 現傳하는 고려 전기(太祖~毅宗) 전체 조서의 현황을 파악하고, 이에 대한 내용 분류에 착수하였다. 당대 실제적인 통치행위의 산물인 조서를 통해 고려의 國政運營課程과 原理를 조명하기 위한 기반 조성의 차원이었다. 이제 이를 바탕으로 고려 조서에 관한 한 차원 승화된 연구 성과가 지속적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The study on Joseo(詔書 ; the Imperial edict) has been mainly focused on the analysis of its form, the officials and offices, and the procedure of issuing it so far. Therefore, the general analysis on the substance of Joseo and its consideration by period has not been attempted. Even the status of Joseo published in the literary documents(文獻資料), Keumsukmun(金石文 ; epigraph), Chan(撰) and Seo(書) has not been within our grip. I attempted to grasp the general situation of all the existing cases of Joseo during the former era of Koryo, from Emperor Teajo to Emperor Uijong(高麗前期 : 太祖~毅宗) and categorize and analyze them on its basis of the outcome. Joseo is Wang-eon(王言 ; the Imperial order) accompanying a set of formality and ceremony. Wang-eon was referred to as Jo(詔)․ Je(制)․Gyo(敎) by form and procedure. In Koryosa(『高麗史』), Koryosajeoryo(『高麗史節要』), Jo․Je․Gyo were not assorted by substance and procedure. Though their substance is similar, they had been referred to differently by king. Since Jo was altered into Gyo in the fifth year of Seongjong(成宗 5年, 986), it had been called Gyo until the 22th year of Hyunjong's reign(顯宗 22年, 1031). However, except during these periods, Jo and Je were used alternately, with Gyo referred occasionally. I regarded them all as Wang-eon because I attempted to research Joseo by substance. There were the 629 cases of Joseo in Koryosa and Koryosajeoryo during the former era of Koryo. On the other hand, 35 cases of Joseo were included in the Chan․Seo in Keumsukmun. I had to depend completely on the literary documents because all cases of Joseo collected in Keumsukmun were about the literature concerning the inscription of high priests' virtue. In the thesis, I assorted and analyzed the total 629 cases of Joseo existing in the documentary records by king and subject. From the results of classification by king, cases of Joseo issued during Emperor Munjong(文宗) era were 176, the most, followed by 85 during Emperor Injong(仁宗), 68 during Emperor Sookjong(肅宗), 55 during Emperor Yejong(睿宗), 49 during Emperor Hyunjong(顯宗), 47 during Emperor Seongjong(成宗). I categorized them all into six areas according to their subjects, that is, by <natural disaster>, <government official>, <rite>, <diplomacy․defense>, <civil>, <cultivation>. The results showed 250 cases concerning government official, 138 cases of rite, 96 cases of civil, 70 cases of natural disaster, 42 cases of diplomacy and defense, 33 cases of cultivation, among which cases of government official and rite combined accounted for two-thirds of the total. This implies that a majority of cases concerning the affairs occurring inside the ruling class, irrespective of commoners were included. Joseos proclaimed as part of Emperor's act of the state were mainly concerned about the internal affairs of the ruling class and their rites, which shows Joseo was used effectively in the process of establishing the ruling system and and the hierarchy. The research so far has been carried out by the entry, Joseo and has been itemized through assortment and analysis by ruler and subject. I challenged to open the new horizon for the research of the political history of Koryo era that has been mainly focused on the organization and syste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