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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베트남 문학에서 일본군 점령 시기가 어떻게 그려졌는가를 논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동남아시아에서 일본군의 점령을 보는 시각은 초기의‘존경심’또는 ‘경외’에서 ‘증오’로 바뀌었다고 얘기되지만 베트남의 경우는 매우 예외적이라고 필자는 주장한다. 베트남에서는 애초부터 ‘존경심’이라든지 ‘경외’는 존재하지 않고 단지 ‘모호한 우려’로부터 ‘극도의 증오심’으로 변화했다는 것이다. 이는 베트남이 동남아시아의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역사적으로 일본의 속성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고, 일본군 점령 말기 동남아시아의 그 어떤 나라에서 보다도 참혹한 재난 (일본군의 쌀 수탈에 의한 200만 가까운 아사자가 생김)을 경험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심리 변화는 문학작품 속에서 매우 잘 드러나고 있는데, 이러한 정서를 파악함으로써 우리는 일본군 점령기를 거치면서 왜 베트남 북부 및 북중부 지역에서 베트민의 세력이 급성장했는지를 명확히 이해할 수 있다. 본고는 이러한 변화를 일본군 점령기를 그린 대표적 문학작품인 응우옌 홍 (Nguyen Hong)의 ‘회색빛 저녁(Buoi Chieu Xam)’과 ‘불꽃 (Ngoi Lua)’을 중심으로 분석하고 있다. 문학 작품에서 그리는 내용은 물론 작가의 상상력의 소산이다. 때문에 문학작품의 내용 그 자체가 사료일 수는 없다. 필자가 관심을 갖는 것은 문학작품의 내용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내용을 만들어낸 작가의 의도 및 작가에게 체현된 베트남인의 정서, 전통, 그리고 시대상이다. 제 1장에서는 베트남인의 전통적 일본인관을 이해하기 위해 역사 속에서 보이는 양국의 관계 및 베트남 지식인들의 일본 이해 방식을 고찰한다. 베트남인에게 일본인은 성실한 교역자며 신실한 불교도이고 또 매우 용맹스러운 전사들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일본인은 잔인성, 침략성을 가진 민족이었음도 베트남인은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특히나 20세기 초 베트남 민족주의자들이 동유 운동 과정에서 직접 겪은 일본상과 일본의 조선, 및 중국 침략은 상호 결합되어 견고한 부정적 일본인상을 형성했다. 제 2장에서는, 부정적 일본인상이 어떻게 문학 속에서 구체적으로 그려지고 있는가를 살피게 되는데, 이를 위해서는 문학작품 속의 부정적 내용 그 자체를 수집하기 보다는 선악의 판단 근거가 되는 유교적 가치 틀에 주목했다. 유교적 이념이 보편적이었던 베트남에서는 유교적 가치가 선악의 판단 기준이 된다고 필자는 생각하기 때문이며 이 기준에 의한 비판이 훨씬 더 독자 대중에게 강하게 호소할 수 있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물론 베트남과 일본은 유교적 영향의 정도 차가 있지만, 중요한 것은, 베트남인들은 일본도 같은 한자/유교 문화권이며 ‘공맹의 자식’이라는 인식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작가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가장 기본적 생활 덕목인 인, 의, 예, 지, 신이 선악 판단의 준거틀로 문학작품의 구성에 사용되었음을 우리는 발견할 수 있는데, 이는 매우 특이한 현상이다. 일본 점령군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다른 나라의 문학작품에서 보이는 종교적 마찰, 강간, 종족적 차별 등의 요소는 베트남 문학작품에서 일본군을 악의적으로 묘사하는데 거의 사용되지 아니한다. 단지 유교적 가치의 위반이 일본군의 악행 근거로 묘사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