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close

이 논문은 고려왕조가 대원몽고국의 무력에 의해 압도되어 제후국으로 전락하였던 13세기의 재상 김방경의 생애와 행적에 대해 살펴본 것이다. 김방경의 중견관료까지의 경력은 왕실과 관련된 숙위직 및 사령부의 장군직이었고, 문반직의 겸직은 3省6部․御史臺․秘書省 등의 要職이었다. 또 50대 후반에 宰相에 임명되어 여타의 핵심관료들이 재상에 임명된 것에 비해 늦은 셈이다. 그렇지만 무인정권의 타도 및 삼별초의 토벌과정에서 급격하게 승진하였는데, 이는 무인정권과 관련이 있었던 舊勢力 숙청 및 몽고의 영향력과도 관련이 있었다. 또 그는 초급․중급의 지휘관으로서 實戰의 경험은 없었지만, 고급 장수로서 갖추어야 할 智․信․仁․勇․嚴의 條件을 갖추고 있었다. 김방경은 어린 나이에 입사하여 중앙관서의 중요관부에 사환하게 되었지만, 그가 40대 후반에 중견관료가 되었을 때는 친족집단으로부터의 후원을 받을 형편이 되지 못하였다. 이의 보강을 위해 義子 및 幕客集團을 양성하여 군사적 기반으로 삼아 참모로 이용하였다. 김방경과 경쟁 관계에 있었던 인물로는 兪千遇와 趙仁規가 찾아지는데, 이들에 의해 일시 어려움에 빠지기도 하였으나, 후일 자신이 실권을 장악했을 때는 관용의 자세를 보였다. 적대관계에 있었던 인물로는 일본원정에서의 論功行賞에 불만을 품은 韋得儒․盧進義․金福大 등이 있었으나, 이들이 김방경에 대한 적대감을 가졌다기보다는 부원배 洪茶丘의 앞잡이였기 때문이었다. 후원관계에 있었던 인물은 柳璥인데, 그는 김방경과 함께 재상으로서 앞뒤를 경쟁하면서도 김방경이 위기에 처했을 때, 이를 國事와 관련된 중대사로 인식하고서 적극 변호하였다. 김방경은 『손자병법』을 위시한 여러 兵書의 내용 및 『춘추좌씨전』에 수록된 戰法에 관한 典故에 해박하였고, 四書三經 및 諸子百家에 대해서도 일정한 식견을 가지고 있었다. 또 김방경은 무인정권에 참여하여 중요관서의 요직을 역임하면서 집정자의 비위에 거슬리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한편 공정한 법질서의 집행을 통해 王室 및 국가기강을 유지하려는 현실대응의식을 지니고 있었다. 이상과 같은 김방경의 행적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조심성이 있게 어지러움을 기다리고 고요함으로써 시끄러움을 기다렸던 將帥라고 할 수 있다.


The aim of this paper was to examine the life and achievement of Bangkyung Kim who was a Koryo minister in 13th century when the Koryo Dynasty was forced to become a vassal state to the Yuan Dynasty of China. As a soldier, Kim experienced various official posts either in the army and government. He became a minister in his late fifties, which was late in comparison to others. Kim started his official career in the central government from his early age, and became a middle rank in his forties. Kim did not have a family background which could provide political assistance to his promotion. In compensation to this deficiency, Kim used a patronage system of the artificial father-son relationship as a base for his military career. He was rapidly promoted to the high rank during the suppression of the uprising by the military and the Sambyolcho. His promotion was greatly assisted by the contemporary politics which was increasingly controled by the Yuan Dynasty. Although he did not have any battle experience, but he was qualified as a high rank militaty officer, as he was a man of wisdom, trust, generosity, braveness and strictness. Two political rivals of Kim were Chunwoo Yoo and Ingyu Cho who put temporally Kim in a difficult situation. Kim, however, showed his tolerance toward them when he was in power. Those such as Ducyoo Wie, Ginui Roh and Bokdae Kim were in uneasy relation with Kim as they thought they were treated unfairly after the military expedition to Japan and they belonged to the Mongol party led by Dagu Hong. Kim was in friendly relationship with Gyung Yoo, a minister who defended Kim when he was in the political crisis. Kim seems to have read most military and strategical books such as 孫子兵法 and 春秋左氏傳 and wide knowledge on 四書三經 and 諸子百家. He seems to have had a talent to judge political situation rightly. He attempted not to offend the military rulers when he was in the military government. But this does not mean that he did not attempted to restore the royal power. In short, Bangkyung Kim was a military person who could wait opportunity with caution and quietn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