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close

권구현이 마르크시즘의 본질을 정확히 인식하여 그의 한계를 지적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이러한 마르크시즘 문학이 있으면 그 반대편에 아나키즘 문학이 있음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권구현이 말하는 마르크시즘 문학의 특징은 문학에서 정치이념의 필연적 소유, 문학에 대한 정치이념의 지배, 정치적 부분의 절대 상위와 예술적 부분의 하위, 정치적 가치와 문학적 가치의 혼합의 부정 등과 같은 일반론이다. 그러면서 그는 “마르크시즘문학은 예술적 입장으로써가 아니라 정치적 입장에서 출발하여, 정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문학을 하나의 도구나 수단으로 사용한다.”는 점을 강조한다.권구현은 이러한 “마르크시즘작가는 작가이기 전에 마르크시스트여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하는 마르크시즘문학은 “민중적일 수 없다”고 비판한다. 그렇다면 ‘민중적 문학’은 무엇인가. 그것은 아나키즘문학의 단초를 보인 ‘북은 북소리’를 내는 ‘본래적’이라는 용어와 같은 개념이자, 본격적인 아나키즘문학론이 되는 우상문제에 대하여에서 사용한 “본연성(本然性)에 기인(起因)한 욕구(欲求)”의 문학이라는 개념과 같다. 즉 그것은 민중의 절실한 내적 요구 또는 현실적 삶의 요구에서 나오는 것이 민중적이 된다. 이 내적 요구와 현실적 요구는 아나키즘의 자발성 원리에 기초한 것이다. 이러한 아나키즘의 개인의 자발성을 중시하는 원리에 대해 권구현은 연극역할론이라는 비유적 설명을 한다.攀 권구현, 우상문제에 관한 이론과 실제, 조선일보, 1929. 12. 5~11. 권구현의 말을 그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한 예를 들어 말하자면 우리가 연극을 행함에 있어서 필요에 의하야 무대 감독이나 화장감독이 있게 되었다고 하자. 그러나 그렇다고 전체를 위하여 役者 이상의 가치나 또는 공로를 돌려보낼 이유가 무엇이며 또 희곡 원작자를 각색자에게 마찬가지로 역자 이상의 대우와 존경을 할 이유가 어데 있느냐?”攀攀권구현의 주장은 연극을 행함에 있어서 역할의 필요에 의해서 배우감독원작자각색자가 있는 것이지, 그 어느 하나가 강조되거나 우상화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즉 러시아 혁명에서 마르크스는 희곡을 제공한 자에 불과하고 레닌은 각색자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들은 러시아 혁명을 수행한 모든 민중들과 역할을 분담한 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을 문학에 전이시킨다면 아나키즘문학은 중앙집권주의와 강권주의를 배격하고,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함으로써 하나의 극이 조화롭게 만들어지고 민중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하는, 즉 집단성을 위한 개인의 자유로운 발양을 강조하는 문학이 된다. 타인의 개입이 없는 직접적인 자기실현을 강조하는 연극역할론은 일본의 아나키스트 大杉榮이 아나키즘의 본질을 “사회적 개인주의”로 규정했듯이 다분히 개인주의적 색채가 있다. 권구현의 아나키즘 문학론의 핵심은 계급사회 건설을 위하여 계급 혁명을 강조한다는 점에서는 마르크시즘문학자들과 같으나, 이 혁명은 마르크시스트들처럼 공식적인 강제성에 구속되지 않고 계급의 ‘본래적’ 요구에 의해서 ‘북은 북소리를 내’야 한다는 프롤레타리아 각자의 역할을 강조한 점에서 구별된다. 결국 권구현의 계급문학론의 핵심은 외적 강제에 의한 것이 아니라 “가장 자연적인 양심의 자유”라는 아나키즘의 자발성 원리로 설명될 수 있다. 그것은 이렇게 요약된다. 카프가 당파성을 통하여 계급담론을 실천하고자 했다면 권구현은 계급적 양심을 통하여 지배담론을 해체하고자 한 셈이다.


The two aspects of the proletarian literature's disidentification in 1920'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