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close

국가보안법은 여순사건을 계기로 제정되었다. 좌익을 금압하여 내란을 미연에 방지한다는 명분에서였다. 그런데 거기에는 반민족행위처벌법에 맞서려는 친일세력의 의도가 담겨 있었다. 반공을 내세워 친일파 문제를 무력화시키려는 속셈이었다. 친일세력을 포함한 집권 이승만 일파는 국가보안법을 무기로 민족진영을 탄압하였다. 친일파 문제의 해소와 반대세력의 무력화를 노린 정치공세였다. 그리하여 소기의 성과를 거두자 이승만 일파는 이 법의 개정을 시도하였다. 이미 장악한 정국 주도권을 한층 공고히 하는 한편 친일파의 기득권을 유지 강화하려는 속셈에서였다. 국가보안법을 제정하던 즈음의 소극적이고 방어적인 입장에서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목표로 전환하면서, 그것을 뒷받침하도록 극우반공체제를 법제적으로 확립하고자 국가보안법을 개정하였던 것이다.


With the outbreak of Yosun Revolt, the National Security Law was enacted by the First National Assembly. The legislators of this law justified themselves declaring that the leftwing element and organization should be suppressed and their rebellion prevented. But the pro-Japanese faction designed this law for resisting against the legislation to punish anti-national activities. They advocated anti-communism while maneuvering to weaken the Japanophile issue. The Japanophile and President Syngman Rhee party pressed the nationalist group by taking full advantage of their position of applying the National Security Law. Their purpose was to dissolve the Japanophile issue and to make the political opposition party powerless. President Rhee party tried to amend the National Security Law after they had accomplished the purpose of enacting the law. And an extreme anti-communism right system was established in the Republic of Korea through this la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