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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스키지소극장(築地小劇場), 해외문학파, 그리고 그 미디어들을 키워드로 하여 극예술연구회의 성립이 지니는 문화사적 맥락과 그 연극사적 효과를 논하였다. 근대의 번역을 절실히 요청했던 맥락에서 스키지소극장은 번역의 모델로서 표상되었지만, 무엇보다 ‘극연’이 성립된 데에는 1930년대 이후 식민체제의 안정화와 함께 새롭게 재편되고 있던 조선의 지식체계에 개입해 들어감으로써 문화적 헤게모니를 획득하려 했던 해외문학파의 욕망이 가장 중요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를 현실화하는 데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한 것은 미디어들이었다. 홍해성이 신극수립이라는 명분을 상징적이면서 실질적으로 보장해준 존재였으면서도 소모품으로써 소비되었다면, 유치진은 해외문학파와의 이질성에 대한 자의식에도 불구하고 해외문학파가 마련한 장(場)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갔다. 해외문학파가 추진한 문화정치는 그의 운동적 기반으로써 매우 유용한 것이었고, 그는 그것을 토대로 해외문학파가 천명했던 극연의 문화사적 가치를 연극사적 가치로 전환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This paper commented on keywords―Sukiji Little Theater[築地小劇場], Haewoimunhakpa[海外文學派], the medias of Kuk-yeon[劇硏]―to read the cultural historic connection for Kuk-yeon' the formation, and the effect of the theatrical history. At the core was Haewoimunhakpa' desire to acquire the cultural hegemony by intervening in the knowledge system reorganizing with the stabilization of colonial system since 1930's. And to carry conclusively were the medias. In this point of view, although Hong Hae-sung[洪海星] was the symbolic and real existence of the justification called Sin-kuk[新劇] plan, he was felt the consumption goods. On the other hand, Yoo Chi-jin[柳致眞] made Haewoimunhakpa' managing table of self-possession. The cultural politics promoted by Haewoimunhakpa was very useful as his movement basis. After this period had passed, in fact 'Yoo Chi-jin' and 'Kuk-yeon' could 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