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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킨타이어가 덕 이후(After Virtue)를 출판한 이래 ‘덕 윤리’는 현대 규범 윤리학의 중요한 흐름 중 하나로 부상하였으며 이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덕의 개념을 강조하는 매킨타이어의 접근법이 불러일으킬 수 있는 오해 중의 하나는 서양 윤리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덕의 개념과 그 중요성이 완전히 부정되었거나 아니면 최소한 거의 무시되었다가 현대 자신의 덕 윤리에 이르러 비로소 부활하였다는 인상을 준다는 점이다. 하지만 덕 개념 자체가 윤리학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은 결코 아니며, 아리스토텔레스가 사용하였던 것과는 다른 개념으로 변형되고 재해석되면서 끊임없이 논의되었다. 이 논문은 이런 사실을 보이기 위하여 서양 근대를 대표하는 철학자인 칸트의 윤리학에서 덕 개념이 어떻게 등장하며, 어떻게 발전하는지 그리고 그의 윤리학 전체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를 밝히려는 목적을 지닌다.칸트의 비판기 윤리학에서 덕의 개념은 주로 의무론적 윤리설을 강화하기 위한 부수적 요소의 역할을 한다. 칸트는 덕을 내적인 원리에 따르려는 행위의 엄정함이며, 자신의 의지를 도덕법칙과 일치시키려는 영속적인 심정이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이런 심정으로서의 덕은 도덕법칙에 대한 존경을 포함한다. 따라서 칸트가 비판기 저술들에서 생각하는 덕은 일차적으로 의무감에 근거하여 도덕법칙에 따르려는 내면적인 심정으로 정의됨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비판기 이후의 저술인 도덕의 형이상학에서 칸트는 이전과는 다른 태도로 덕을 윤리학의 중심 개념으로 부각시킨다. 덕은 자신의 의무를 완수하려는 인간 의지의 도덕적 강건함이며, 스스로 법칙을 형성하는 이성에 의해서 부과되는 도덕적 구속으로 정의되면서 인간의 내적인 자유에 기초한 자기구속, 자기강제로 상승한다. 또한 덕이 내적 자유에 기초한다는 점은 칸트가 도덕의 형이상학을 두 부분으로 나누는 기본적인 근거로 작용한다. 왜냐하면 덕 이론은 내적 자유와 관련하는 반면, 법 이론은 주로 외적 자유 및 외적 구속과 관련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덕의 의무와 법적 의무, 더 나아가 완전한 의무와 불완전한 의무를 구별하는 근거로 확대된다.칸트의 덕 개념은 특히 비판기 이후 도덕의 형이상학에서는 매우 큰 중요성을 지니는 핵심적인 개념으로 부각된다. 그리고 이를 통하여 칸트의 윤리학이 도덕법칙의 준수 여부만을 기계적으로 판정함으로써 행위의 도덕성을 결정하는 냉정한 법칙 중심주의 또는 비현실적인 엄숙주의라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가 제공된다고 여겨진다. 이 점은 최근 칸트 윤리학에 대한 논의가 그것을 단순한 의무론 또는 형식주의로 보는 폭 좁은 시각에서 벗어나 그것이 포함하는 다양하고 풍부한 요소를 재해석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진다는 점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리고 이런 해석 과정에서 덕의 개념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함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런 측면에서 칸트의 덕 개념에 관한 논의 전반은 칸트의 윤리학이 지니는 다양성과 건전한 포용력을 잘 보여 주는 예라고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