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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는 프로타고라스의 신화를 어떤 관점에서 읽어야만 하는가? 프로타고라스 320c8~323a4에 등장하는 프로타고라스의 문명 발생 신화에서 우리는 플라톤 대화편과의 연관성 가운데 신화의 의미 그리고 기능과 관련된 세 가지 물음을 제기할 수 있다. (a) 프로타고라스의 시각에서 신화는 어떻게 이해될 수 있는가? 플라톤적 프로타고라스는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 (b) 프로타고라스의 진술은 플라톤을 통해 그리고 대화 상황이 드러내는 맥락을 통해 어떻게 평가될 수 있는가? 프로타고라스가 제시하는 소피스트적 부족함은 무엇에서 기인하는가? 플라톤은 신화 자체에서 드러나는 이러한 부족함을 그의 시각에서 해결하고자 무엇을 암시하고 있는가? (c) 이 신화는 오늘날 우리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프로타고라스는 서술 형식으로 ‘신화’를 선택한다. 로고스를 통해서도 역시 동일한 사항은 언급될 수 있지 않는가? 플라톤에게서 신화와 로고스는 자유롭게 교체될 수 있는가? 이 물음에 대한 대답으로는 긍정과 부정이 모두 가능하다. (a) 독자는 신화와 로고스를 서로 섞어 변환할 수 있다. 플라톤의 경우, 신화는 로고스에 의해서 규정된다. (b) 하지만 이 두 형식은 다양한 기능을 수행한다. 이러한 신화의 로고스적 형태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플라톤에게서 신화는 로고스에로의 변환이라 할 수 있다.프로타고라스는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 그는 ‘신화’라는 형식을 더 유쾌하고 자극적인 것으로 생각한다. 이러한 형식을 통해 그는 앎을 수공업적 기술과 정치적 덕목으로 구분한다. 그리고 프로타고라스에 의하면, 아이도스와 디케는 교육에 의해서 발전하게 되는 성향이다. 이것은 아마도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에게 부여하고자 한 기술일 것이다. 그러나 프로타고라스는 아레테의 본질을 설명하지 않는다. 그는 사람들이 공동체에서 아레테로 여기는 것에 자기 관심의 방향을 설정한다.플라톤은 소피스트적 연설의 불충분함을 극복하기 위해서 독자들에게 어떠한 점을 암시하고 있는가? 플라톤에게는 ‘원인’이 문제시된다. 원인은 로고스의 직접적 개입을 통해서 도달할 수 없다. 플라톤은 이것을 기꺼이 역사적 시원(始原)을 통해 반영하고자 한다. 플라톤에게 ‘신’은 앎의 근원이다. 신화적 상상 속에서 신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신적인 것은 철학적 의미에서 존재하는 것이다. 탈신화화를 위한 열쇠는 인간에게 고유한 것이 로고스라는 점이다. 로고스는 신적인 것과 친척 관계에 있다. 신적인 것은 바로 로고스인 것이다.절대적 정의가 없다고 보는 프로타고라스는 그 자체로 합목적적으로 형성된 기존의 상태에 자기 이론의 근거를 둔다. 플라톤은 그러나 이것을 넘어서 진리, 즉 기존의 상태를 넘어선 규범적 근거를 묻는다. 그래서 플라톤은 새로운 권위, 즉 확실한 앎에 근거한 권위를 논증한다. 오늘날 우리들에게 프로타고라스 신화의 중요성은 인간이 결핍존재이며, 형벌의 의미와 목적은 복수가 아니라 개선이라는 점이다.질문과 대답을 선호하게 되는 객관적 근거는 ‘변증술’이다. 진리는 하나의 관점이 아니라 다양한 관점, 즉 다양하고 대립적인 관점들의 심오한 것과의 합일 가운데 드러난다. 이러한 시각에서 아레테의 가르침 가능성에 관한 소크라테스와 프로타고라스의 입장은 다음과 같이 통합적으로 연결될 수 있다: 아레테는 가르쳐질 수 있지만, 다른 학문들과 동일하게 가르쳐질 수는 없다. 혹은 아레테는 다른 학문들처럼 가르쳐질 수 없는 것으로 앎(episteme)을 근거로 한다.전체적으로 보자면 프로타고라스 문명 발생 신화의 ‘원인론적’ 기본적 특색에서 플라톤적 인간학의 기본 입장을 다시금 인식할 수 있다.


Uber die Platonische Rekonstruktion vom Protagoreischen Kulturentstehungsmyth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