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close

이 책은 다시로 가스이(田代和生) 교수가 쓴 ꡔ倭館—鎖國時代の日本人町ꡕ(文藝春秋, 文春新書 281, 2002)을 정성일 교수가 옮긴 것이다. 原著의 부제인 「쇄국시대 일본인 마을」을, 역자는 「조선은 왜 일본사람들을 가두었을까?」로 고쳤다. 왜 굳이 이렇게 바꾸었을까? 정말 조선 정부는 일본인을 가두었을까? 초량왜관은 높이 2m의 돌담으로 사방이 둘러싸여 있었다. 왜관 밖에는 6곳의 검문소가 있었다. 1709년에는 지금 부산역 앞 상해문 부근에 設門을 만들어, 조선인과 일본인을 차단하는 경계를 만들었다. 이처럼 왜관은 외형적으로는 ‘갇힌’ 공간이었다. 그러나 역자가 이 책을 통해서 읽어내고, 그것을 통해 독자에게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갇힌 공간’, ‘닫힌 공간’의 왜관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기 때문에, 「조선은 왜 일본사람들을 가두었을까?」라는 역설적인 부제를 달았다. 원저가 출간되었을 때, 한일교류사를 공부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번역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졌을지 모른다. 평자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역서를 읽어 가면서, 그것이 얼마나 과욕이며, 부질없는 생각인가를 느끼게 만든다. 역서는 원저를 단순하게 번역한 것이 아니라, 400여 항목, 50여 쪽의 역주를 붙였다. 저자의 「한국어판에 부쳐」에서, 최선의 번역을 위하여 양자가 몇 시간씩 논의를 거듭하는 날이 여러 날 계속되었다고 한 것처럼, 한국어판을 출간한 두 연구자의 노력을 엿볼 수 있다. 역자도 조선후기 한일무역사 등 한일교류사 분야에서 최고 수준의 연구자다. 역서는 역자의 학문적 자존심이 걸린 작업이었을 것이다. 저자도 일본역사 자료에 정통한 역자에 의하여 한국어 번역서가 출간된 것을 진심으로 기쁘게 생각한다고 하였다(9쪽). 이 책은 한일교류사 분야의 최정상급 연구자인 저자와 역자, 이 두 환상의 콤비가 만들어낸 수년간에 걸친 노력의 산물이다. 한일교류사를 공부하는 평자는 이 책의 간행을 누구보다도 먼저 축하하면서, 아울러 부러운 마음 또한 감출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