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close

오키나와에서는 이에나가 사부로오의 '교과서 소송' 이후 그 동안 '옥쇄'로 미화된 채 침묵되어왔던 '집단자결'의 실상을 둘러싸고 격렬한 공방이 있었고, 이는 군대의 논리와 민중의 논리가 대결하는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최근에는 두 개의 논리 모두 집단자결에 이르는 과정을 지나치게 단순화하고 있다는 비판적인 문제의식이 제기되고 있다. 즉 자발적인 옥쇄로서의 집단자결과 강제적인 주민학살로서의 집단자결이라는 입장 모두 가해와 피해, 자발과 강제 구도를 양자택일하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는 지적이었다.그러나 치비치리가마와 시무쿠가마의 사례 분석에서 알 수 있듯이 가해와 피해, 자발과 강제의 관계는 제로섬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연속적이며, 그 연결고리에는 어떤 행위성을 가능하게 하는 '전쟁체험'의 내용이 있다. 그런데 그 체험의 내용이 전쟁체험이 아닌 이민체험이었을 때 대조적인 귀결을 가져왔다. 오키나와 주민들이 집단자결에 저항했던 것이다. 이는 함의하는 바가 매우 크다. 왜냐하면 죽음으로의 동원을 예비하는 여러 요소들과 구조가 존재한다 하더라도 이를 상쇄하는 요소들이 동시에 존재한다면, 그 결과는 파국으로 치닫지 않는다는 사실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폭력을 예감하고 그것에 저항하는 가능성, 이는 동아시아의 다양한 유형의 민간인학살의 사례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