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close

보수와 진보는 상황의 맥락 속에서 읽혀져야 할 사상의 양면이지 추상적인 시간과 공간 속에서 절대적으로 규정되어 있는 사상의 카테고리가 아니다. 어제의 보수적인 측면이 오늘에는 진보적인 측면으로 될 수 있고, 오늘의 진보적인 측면이 내일에는 보수적인 측면으로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진보와 보수는 절대적으로 대립되어 있는 모순 관계가 아니라 상호 소통하면서 함께 할 수 있는 공생 관계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우리 현대사에 등장하는 진보와 보수의 관계는 반공주의, 군사주의를 사이에 두고 서로 적대적이었다. 그래서 우리의 보수주의는 살려야 할 전통도, 그 정당한 주체도 마련하지 못했으며, 따라서 미래의 열린 지평을 추구하는 진보주의도 적색 분자로 규정되었다. 그러므로 우리의 역사에는 진보와 보수의 관계보다 좌와 우의 관계가 더 강력하게 자리하게 되었으며, 따라서 우리의 보수주의는 기형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우리의 지성인들은 이와 같은 불행한 현상을 바로잡기 위하여, 즉 참된 진보를 위하여 비판적 몸부림을 쳤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우리 철학계의 중심 인물이었던 몇몇 철학자들은 이런 몸부림에 참여하여 철학 본래의 사명이기도 한 비판을 추구하기보다는, 오히려 기형적 보수주의에 참여하여 그에 기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