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close

과연 유가는 죽어도 사는 것에 관심을 가졌을 것인가이다. 그리고 그 결론은 ‘아니다’이다. 죽어도 사는 문제를 다시 나누면 두 가지 경우이다. 하나는 실제로 이승의 방식 그대로는 아닐지 몰라도 나와 동일성을 가진 또 다른 내가 죽지 않고 산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비록 목숨은 죽을지라도 피붙이를 포함하여 살아 있는 다른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있는 만큼 살아 있다는 것이다. 먼저 앞의 문제에 대해서 말하면 유가는 관심이 없었을 뿐 아니라 믿지 않았다. 그리고 뒤의 문제에 대해서도 유가는 솔깃해 하지 않았다. 죽음에 대한 유가 철학의 문제는 목숨의 생물학적인 것이 아니요 또한 영생과 영혼의 존재론적 문제가 아니라 살아도 죽은 것이나 다름없거나 아니면 죽어도 사는 삶의 의미론적 문제였다.유가는 삶에서 자연스러움을 중시하였다. 이런 것은 도가의 인생관과 같아 보이지만, 유가는 법도를 실천하되 다른 목적 의식이 없이 그렇게 한다는 것이 그 자연스러움의 제일의(第一義)이다. 그렇게 해서 끝내 행동거지가 모두 의도하지 않아도 저절로 법도에 맞는 것이 그 제이의(第二義)이다. 법도란 이미 알아보았듯이 ‘천리(天理)의 당연(當然)한 것’과 ‘사물의 당연한 이치’이다. 아마도 도가의 경우 당연(當然)인 이상 자연(自然)은 아니라 할 것이지만, 유가는 도리어 군자를 포함하는 보통 인간에게서는 당연이 자연이지 그냥 자연은 야만이라고 할 것이다. 단지 성인의 경우 그의 자연은 당연이면서 자연일 따름이다. 한마디로 유가의 삶이란 문명적 삶이고 그 조건은 법도의 자연이지 야성의 자연이 아니라는 말이다.유가는 인생은 궁리의 길을 밟아 가면서 마음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바꾸어 말하면 이 마음에 실려있는 하늘이 부여한 어떤 그 무엇의 소명을 알아 발휘하는 자연스러움을 실천하는 삶이 유가의 인생길이다. 그런데 유가는 이것을 지(智)와 인(仁)을 겸비한 삶이라고 하였다. 즉 인간사이든지 자연의 사물이든지 간에 객관적 법도나 이치를 확실히 알아서 인간에게 부여된 큰사랑의 능력을 다 발휘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하늘을 섬기는 길이니 인생은 그렇게 살다가 마치는 것이라는 것이 유가의 입장이다. 앎이 부진하면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까닭이나 방법을 알지 못할 것이고 또 사랑을 실천하는 것으로 이어지지 못한 앎은 진정한 앎이 아니다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