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close

元聖王 金敬信은 宣德王 사망 후 武烈王系 金周元과의 왕위 경쟁에서 승리하여 즉위하였다. 그러나 그는 선덕왕대 정치적 실권자이자 무열왕계의 수장이었던 김주원에 비해 상대적으로 정치적 영향력이 약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그는 선덕왕대초부터 무열왕계 김주원 세력에 불만을 가진 여타 진골귀족들을 자신의 지지 세력으로 포섭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특히 선덕왕 5년 무열왕계의 압력으로 이루어진 양위표명의 결과 김주원이 부각되자, 위기의식을 느낀 그는 더욱 자신의 지지세력 확대와 김주원 세력 견제에 주력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에 선덕왕 사망 후 김주원을 효과적으로 견제하고 먼저 입궁해 즉위할 수 있었다고 여겨진다.그는 즉위 후에도 무열왕계 김주원 세력을 의식하여 김주원을 溟州郡王에 봉하고 그의 아들 宗基를 侍中에 임명하는 등 정치·사회적 불만을 무마하고자 하였다. 또한 太宗大王과 文武大王을 五廟에 포함시키고 眞智王의 追福之所인 奉恩寺를 시창하는 등 무열왕계에 대한 상징적인 배려도 행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중대 무열왕계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즉, 중대 왕실의 신성성·정당성과 관련이 있는 萬波息笛 설화를 재편성하여 진지왕을 축출한 眞平王과 연관시키고 護國三龍 설화를 통해 중대 왕실의 호국적 기능을 약화시키고자 하였던 측면이 그것이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무열왕계 왕실의 왕위 계승이 단절되고 원성왕 직계에 의한 왕위 계승이 이루어져 하대 왕실이 성립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었다고 여겨진다.


Ascending the Throne of King Wonseong and Formation of the Late Era Royal Family in Sill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