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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고구려 東盟의 정치의례적 성격을 지적하고 그 기능을 밝혀보려는데 목표를 두고 있다. 이를 위해서 우선 『삼국지』 동이전에 보이는 동맹 관련 사료를 검토하였다. 그 결과 동맹은 10월 제천을 가장 큰 목적으로 하여 '公會', 隧神祭, 諸加의 裁判 등이 열렸던 나라 안의 큰 모임이었다(國中大會)고 이해되었다. 그리고 '공회'가 본고의 논의를 이끌어갈 만한 행사로서 주목되었다. '공회'는 祭天과 더불어 개최된 정치회의였다. '공회'에는 국왕과 국왕의 신료집단 및 제가 그리고 大加의 신료집단이 참석하였다. 지배층 대부분이 포함된 인적구성이라고 할 수 있다. '공회'의 주재자는 국왕이었으며, '공회'의 참석자들은 국왕 신료로서의 성격이 강했다. 이러한 인적구성과 성격으로 볼 때 '공회'는 대규모 朝會에 견주어지는 君臣會議의 일종으로 이해된다. 고구려의 10월은 1년의 기준이 되는 시점으로 파악된다. 그러므로 10월 동맹은 紀元儀禮의 맥락에서 접근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동맹 '공회'는 1년을 결산·정리하면서 새해를 기약하는 정치회의였다고 이해된다. '공회'에서는 지배층 다수가 참석한 가운데 부세 파악이 이루어졌고, 공물 혹은 예물 등을 국왕에게 납부함으로써 1년을 결산하고, 또한 이를 재분배하면서 새해의 君臣 관계를 갱신한다는 정치적 상징성을 보여준다. 그리고 '공회'의 정치적 상징성은 그것이 의도한 바, 정치세력 간의 통합력 제고와 국왕 중심 지배질서 구축에도 일정하게 기여했다고 예상된다. 이러한 정치적 기능과 함께 '공회'가 대규모 朝會를 연상케 한다는 사실을 아울러 고려해 보면, 동맹 '공회'는 정치의례였다고 판단된다. 즉 동맹의 진행과정 속에서 정치의례 '공회'가 개최되었으며, 이를 통해 동맹은 정치적인 기능을 발휘하였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