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close

본고는 2003년 중국에서 발간된 『集安高句麗王陵』 보고서를 분석하여 집안지역 超大型積石墓의 전개과정과 주요 적석묘의 피장자를 비정한 글이다. 『集安高句麗王陵』에 게재된 초대형적석묘 13기는 階墻積石墓 4기, 階段石槨積石墓 6기, 階段石室積石墓 3기 등으로 대별된다. 이 가운데 무덤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담장을 쌓듯이 造營한 階墻積石墓는 계단적석묘보다 앞선 형식으로 3세기 중반 이전에 축조되었다. 3세기 중후반의 계단석곽적석묘는 階墻積石墓에서 階段積石墓로 이행하는 양상을 보여준다. 특히 臨江墓는 階墻積石墓의 요소를 많이 간직했고 集安盆地 동쪽에 위치했다는 점에서 3세기 중반에 사망한 東川王의 무덤으로 비정된다. 계단석곽적석묘는 4세기 이후 더욱 발전하다가 4세기 후반에 계단석실적묘로 이행했다. 卷雲紋瓦當을 분석하여 4세기 이후 초대형적석묘의 피장자를 비정했다. 집안지역에서는 4세기 초부터 권운문와당을 제작했는데(A형), 320~350년대에는 8등분 雲紋部, 連弧部, 삼각거치문 周緣部 등을 갖는 전형적인 형식이 제작되었다(B형). 이러한 전형적인 형식은 350년대에 중국적 요소가 새롭게 가미되면서 변형되다가(C형), 360년대 이후 連弧部의 퇴화(D형) 및 雲紋部 周緣部의 퇴화(E형)가 진행되다가 소멸되었다. 따라서 전형적인 형식인 '己丑'명(329년) 와당이 출토된 西大墓는 329년 직후에 사망한 美川王陵으로 추정되며, '戊戌'명(338년) 와당이 출토된 禹山下992호분은 그 전후에 사망한 왕족이나 귀족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퇴화형 권운문와당이 대량으로 출토된 千秋塚은 360년대 직후에 사망한 故國原王陵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太王陵은 391년에 사망한 故國壤王陵 그리고 將軍塚은 廣開土王陵으로 각기 비정된다. 『集安高句麗王陵』 보고자는 太王陵 동북방에 위치한 이른바 '祭臺'와 '好太王'명 銅鈴을 근거로 태왕릉을 광개토왕릉으로 비정했다. 그렇지만 '祭臺'라는 石臺는 여러 정황으로 보아 祭壇으로 보기는 어려우며, 장례나 제사 관련 부속시설로 보인다. 또한 '好太王'명 銅鈴도 '-好王'이 여러 명 존재했다는 점에서 광개토왕과 직결시키기는 힘들다. 더욱이 '辛卯年'은 391년으로 추정되는데, 이 해는 광개토왕의 卽位年이자 고국양왕의 沒年이다. 고분 출토품이라는 점에서 고국양왕의 죽음과 관련될 가능성이 높다. '好太王'명 동령은 태왕릉이 고국양왕릉일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한다.


Koguryo dynasty's Extra-large Stone-Layered Tombs(超大型積石墓) at the Jian(集安) area : Construction of the tombs, and the Persons Buried the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