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close

그동안 학계에서는 중국 길림성 集安에 있는 太王陵을 高句麗 제19대 왕인 광개토왕의 능으로 比定하는 설이 대세를 이루어 왔었다. 그런데 필자는 前稿에서 태왕릉은 광개토왕릉이 아니라 광개토왕의 父王인 故國壤王의 陵으로 비정하였다. 태왕릉이 고국양왕릉이라면 광개토왕릉이 어디에 존재하는지를 밝혀내어야 할 것이다. 本稿는 광개토왕릉이 어디에 있는가를 찾는 방법으로, 당시 碑를 기획한 사람이 분명 기본 모델이나 표본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라는 점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에 碑가 세워지는 5세기 初 당시 고구려는 중국의 喪禮文化에 대한 이해가 있었음을 『南齊書』와 『周書』 등의 관련기록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또한 능비에는 立碑의 목적을 광개토왕의 업적을 후세에 顯彰하는 데에 있음을 명백히 하고 있다는 점에서 능비를 왕의 勳績碑, 즉 神道碑로 보았다. 중국의 建碑文化에서 묘 앞에 세우는 勳績碑(=墓碑)를 神道碑라고 칭하게 된 것은 風水家들이 비를 세울 때, 능으로 향하는 神道의 東南方에 碑를 설치하게 됨으로서 그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즉 능의 주인공과 관련된 훈적 등을 명기한 비의 立碑處는 능의 동남방이었다. 광개토왕릉비는 장군총의 羨道 입구에서 보면 정확히 동남방에 있다. 이는 장군총이 광개토왕릉임을 말해 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