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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선송국리유형의 실체와 송국리유형의 형성과정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 송국리 유형의 발생지로 생각되고 있는 충청지역의 전기무문토기, 선송국리, 송국리유형 간의 시공적 관계에 대한 파악이 필수적이라고 보고, 이들간의 관계에 대해 논의한다. 각 유적의 고고학적 양상을 통해 볼때, 송국리 유형의 발생이 흔암리식 토기의 발생과 동시기라는 주장을 비판하고, 선송국리는 문화접변의 결과가 아니라 시간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주장한다. 선송국리 시기는 전기무문토기 충청지역의 인구밀집지였던 천안 백석동 유적이 해체되면서 인구분산이 일어났던 시기로 볼 수 있으며, 이와 함께 각종 문화요소의 변형이 산발적으로 발생하였다. 송국리 유형은 이후 다시 금강 중하류에 인구집중이 발생하면서 양식이 통일되면서 형성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백석동의 해체 및 선송국리시기 인구분산에는 인구과밀로 인한 경제적 요인이 개입되어 있었고, 이후 송국리 단계에 들어 금강중하류에 인구가 다시 집결하는 것은 수도작 농경의 본격적 시작으로 인한 노동력확보 때문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This paper discusses the relationship among the Early Mumun, Pre-Songgukri, and Songgukri assemblages in Chungcheong area, the probable home of the Songgukri assemblage. Criticizing an arguement that the Songgukri style pottery and the Hunamri style pottery appeared contemporaneously, this paper suggests that the Pre-Songgukri must be seen as having chronological implications, rather than as a result of amalgamation of two different material cultures. During the Pre-Songgukri period, people dispersed from Baeksokdong, the largest settlement in the area, to the south and western coast, and cultural elements gradually and diversely changed at various locales. The Songgukri assemblage was developed during the re-aggregation in the middle/lower Geum River Valley, as a result of stylistic standardization. It has been suggested that subsistence economic problems due to the high population density led to the demographic dispersion from Baeksokdong, and that the re-aggregation in the lower/middle Geum River Valley resulted from needs for labor forces as wet field technology was actively appli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