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close

한국 무속에서 신에 대한 숭배는 인간의 삶을 어둡게 하는 한계에 대한 인식, 좌절에 대한 인식과 재난에 대한 인식에 기인한다. 굿은 부정(不淨)과 한(恨)의 관점에서 악에 대한 인식을 의미한다. 이 글에서, 본인은 어떻게 굿이 굿 공동체에 부정과 한에 대한 인식을 반영하는지와 어떻게 이것이 세계관의 여러 면을 형성하는지를 보이고자한다. 굿 공동체의 부정에 대한 관심은 Mary Douglas가 Purity and Danger라는 책에서 강조한 공포에서 나온다. 공포는 출생, 질병과 죽음과 같은 애매한 변화의 상태를 겪으면서 생기는 분열에 대한 두려움이다. 이런 상태와의 접촉이 분열을 위협하는가 하면, 신성함과의 접촉은 개인적인 온전성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Douglas가 깨달았듯이, 부정이라는 재난에 대한 걱정은 일치에 대한 도덕적인 지향을 의미한다. 굿은 보통 부정거리로 시작하고 전라도에서 죽은 이를 위한 굿은 그 자체가 씻김굿이라고 한다. 많은 굿에서 나타나는 산 이와 죽은 이의 극적인 상호작용에서, 부정은 한으로 상처는 불경스런 가족 관계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부정거리의 지향은 무당의 중개로 산 이와 죽은 이 사이의 사이코 드라마 같은 상호작용으로 구체화되고, 그런 드라마는 한의 정화와 가족의 온전성 회복을 위한 기회를 제공한다. 인생의 위험과 좌절과 악에 맞닥뜨렸을 때 생기는 공포와 걱정은 대부분의 굿의 역동성의 토대를 이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굿 공동체의 악에 대한 인식은 정화하는 자유, 일치와 조화의 가능성으로 열려있다. 이것은 죽은 이들을 위한 굿의 절정에 이르는 의식에서 가장 선명하게 나타난다. 예를 들어 서울의 진오귀굿의 마지막 거리에서 바리공주를 연기하는 무당은 죽은 이를 “좋은 곳”으로 인도한다. 그때 바리공주는 제단주위와 종이꽃으로 덮인 가지문 (저세상으로 통하는 문) 앞에서 느린 걸음으로 아름다운 춤을 춘다. 무당은 위에서 말한 굿에 등장하는 사이코 드라마의 정화력에 이 미학적인 상징행위의 정화력을 더한다. 이러한 의식은 죽은 가족의 일생에서 위엄과 개화하는 완성의 순간인 최후를 기린다. 이것은 죽음에서 모든 것이 흩어져 버릴지도 모른다는 궁극적인 위협에서 나오는 부정을 온전성과 미의 순간으로 옮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