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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麗史』 所載 大晟雅樂 記事:중국문헌인가, 한국문헌인가? 1970년대 말 필자가 박사학위논문을 작성할 때, ꡔ세종실록ꡕ(世宗實錄)에 보이는 ꡔ주례도ꡕ(周禮圖)라는 문헌을 참고한 적이 있다. 필자는 이를 대략 1110년에 저술된 중국의 문헌 ꡔ주례경도ꡕ(周禮經圖)라고 지적한 바 있다. 당시 송방송(宋芳松) 교수도 이와같은 작업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었으며, 이후 유용한 정보를 서로 교류할 수 있었다. 송방송 교수의 회갑을 기념하는 논문을 청탁 받았을 때, 필자는 한국문헌에 보이는 여러 참고문헌들을 재검토하는 이전의 일들이 생각났으며, 이러한 주제로 논문을 작성하고자 결정하였다. 현재 중국학(中國學)에서는 각 문헌에 등장하는 인용문들을 철저하게 고증하는 작업이 잘 진행되고 있으나, 한국학(韓國學)에서는 이러한 작업이 그리 활발하게 진행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므로 본고에서는 대성아악(大晟雅樂)을 한 실례로 들어서 이를 살펴보고자 한다. ꡔ고려사ꡕ(高麗史)에 의하면, 대성아악은 1116년 송나라의 휘종(徽宗)이 보낸 것이다. 여기에 네 가지 형식의 음악이 소개됐는데, 이 기록이 누구에 의해서 작성됐는지에 대한 아무런 언급도 없다. 중국의 ꡔ송사ꡕ(宋史)·ꡔ정화오례신의ꡕ(政和五禮新儀)·ꡔ송회요ꡕ(宋會要)·ꡔ문헌통고ꡕ(文獻通考) 등의 자료에 의하면, 황제의식에 사용되는 음악이 기록됐지만, 황제 이하급의 의식에서 사용되는 음악은 기록되지 않았다. 고려왕조는 중국 송나라의 한 성(省)으로 인식됐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음악이 하사되었다. 필자는 이 논문에서 ꡔ송사ꡕ와 ꡔ고려사ꡕ에 서로 대응되는 ꡔ송사ꡕ 등의 친사등가(親祠登歌)와 ꡔ고려사ꡕ의 친사등가를 사례로 들었다. 이러한 비교를 통해서 ꡔ고려사ꡕ에 보이는 성(省)급 악현(樂懸)에서는 대체적으로 악기의 수가 반임을 알 수 있었다. ꡔ송사ꡕ 등의 문헌에 보이는 궁가(宮架)와 ꡔ고려사ꡕ의 헌가(軒架)를 비교하였다. 황제의 궁가는 4면에 악기를 배설하는데, 성급의 헌가에서는 3면에 악기를 배치하고 있으며, 악기의 수도 적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러한 문헌 기술에서 구조라든지, 순서라든지, 언어 등이 거의 고정적으로 서로 같았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이러할 실례를 통해서 ꡔ고려사ꡕ에 보이는 대성아악은 1116년 송나라에서 수입됐을 당시의 원자료로부터 그래도 전제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등가·헌가 이외의 다른 두 음악도 이와 거의 같이 해석될 수 있다. 결론적으로 한국문헌에 보이는 여러 중국 관련 문헌을 조사 연구하는 작업은 한국의 역사가들이 역사를 편찬할 때 어떠한 생각을 가졌는지에 대하여 좀더 명확히 알 수 있도록 해주며, 동시에 이를 성공적으로 추리해서 밝히는 학문적 성과를 얻도록 도와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