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close

당말 이래로 지속된 무인 우세 상황에서 문관들의 지위와 역할은 더욱 위축되었다. 그렇지만 오대 문관은 이처럼 어두운 시대 상황에서 자신의 역할을 찾고자 하였다. 문관의 입장에서 보면 후량과 후당의 교체와 후당과 후진의 교체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즉 공포의 대상이었던 주전충과 복당의 기대주였던 장종의 시해는 문관에게 시대와 왕조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는 계기가 되었으며, 후당 신권의 상징이었던 추밀사 곽숭도와 안중회의 몰락은 관료로서의 자신들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았다. 참된 천자는 자신의 안위보다는 사직을, 사직보다는 민을 우선하는 천자가 되어야 하며, 만일 천자가 민을 안양할 수 없다면 관료들이 천자의 역할을 대신해서 민을 안양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오대 왕조와 문관 사이에는 절대 충성을 강요하지 않게 되고 ‘安民’에 기반을 둔 문관의 태도를 인정하는 묵계가 형성되었다. 오대 왕조는 실력과 경험을 겸비한 기존 문관을 받아들임으로써 왕조의 안정을 꾀하고자 했고, 문관은 왕조의 이러한 태도를 통해서 절대 충성이라는 고뇌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아 나갔다.


在分裂政局下,文官为了生存必須導找新的立足点。后梁文官一直以消極的態度戰戰兢兢地注視着政局的變化。有些后梁的文官在內心否定后梁,肯定举復唐的旗幟的李克用勢力。后唐庄宗遭弑害意味着復唐的可能性完全消失了,同時天下安寧的希望也消失了。此時,文官無論在哪个朝代出仕,他們处于同样的地位,且漸漸脱离了舊唐的影子。后唐和后晋的更迭只不過是單純的政變,沒有任何的意義。這点使文官能够擺脱王朝變更的恩怨,恢復唐朝的影子以及對君主不忠的苦恼。 后梁太祖和后唐庄宗仍然給人以天子强烈的印象,但他們的無可奈何的沒落,且連后唐明宗也不自詡統一天子的威風,給文官留下了含糊的天子印象。這些情况都令文官重新考慮自己的天子观。因此产生了重視社稷和希望天子積極参與政事的天子观。 文官在王朝頻繁更迭的情况下,選擇以安民为主的官僚观和忠实于現王朝的態度,能渡過乱世。后周世宗的出現引起了文官官僚观的變化。从保身主義转變到以安民为主的官僚官,又受到了新的挑戰。 文官忠实于現王朝的態度,不但沒有給各个王朝造成不利的影响,反而給文官带来名分。王朝也对文官忠实現王朝的態度沒有多麽不满。因此文官認为王朝的興亡只靠天子,他們只需忠实于現王朝而已。重要的是文官不管王朝是否采納其忠言,都認为尽了自己的義務,于是能够擺脱对前王朝的恢思。 在這种情况下,文官與以前不一样,能够逐漸形成共性,以積極谏言而逐步参與政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