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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체가 중에서 최초의 작품인 <한림별곡>은 남다른 위치를 점하고 있다. 여타의 갈래와는 달리 후대에 창작되는 작품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본고는 우선 <한림별곡>과 유사한 표현구를 지닌 경기체가 작품을 주목하고, 후대 경기체가의 변모양상을 살폈다. <한림별곡>에서 출발한 ‘찬탄과 찬미의 주제성’은 경기체가 전반의 갈래적 속성으로 발전한다. 조선조 건국 이후 유교이념이 뿌리를 내리기 전까지, 전대의 불교이념이 쉽게 청산되지 않았고, 승려계층이 궁중의 불교의례를 담당한 측면을 볼 수 있었으며, 불교계 경기체가도 창작될 수 있었다. 조선 전기는 고려 후기의 문화적 자장 속에 놓여 있었다. 그래서 궁중악으로 쓰인 속요의 표현을 경기체가가 공유하고 있었고, 이 표현특징이 조선 중기의 주도적인 장르인 시조에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결국 조선 전기는 속요를 비롯한 경기체가의 시대였으며, 서서히 조선조 이념에 충실한 시조가 16세기 즈음부터 그 주도권을 확보하게 된다. 경기체가는 300-400년 동안 장르를 지속하면서도, 대체로 <한림별곡>이 마련한 도락적․유락적 풍류를 계승하고 있었으며, 도락적 풍류는 도학적 풍류로 변모하고, 유락적 풍류는 자연 완상을 거쳐 자연 친화와 수신의 풍류로 변모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일부는 유락적 미의식의 극대화로, 일부는 도락적 미의식의 극대화로 나가기도 했다. 경기체가는 도락적․유락적 풍류를 포괄하는 일상적 삶을 충실히 담고 있었으며, 그들이 추구하는 이상세계를 지향하고 있어, 현실과 이상이 조화된 문학이라는 의의를 제시하였다.


"Hallymbyeolgok" that is the first poetry in Gyeonggichega has peculiar situation. It has vital influence on the latter Gyeonggichega in different way to another genre. 'Thematic property of the admiration and glorification' starting from Hallymbyeolgok graw up to the general property of Genre. There remained Buddist culture and ritual in former term of Choseon Dynasty before solidifying Confucian footing. This period was put on a prolongation of the Koryeo culture, that looked like magnetic field. So Koryeo literature of this period(AD 14C-16C) such as Sogyo and Gyeonggichega took the leadership better than the Sizo. Gyeonggichega succeeded to an aesthetic sense which was the pleasure from mediation(道樂) and the pleasure-seek(遊樂) starting from Hallymbyeolgok. Aesthetic sense of the pleasure from mediation changed into the moral-oriented confucianism, and aesthetic of the pleasure-seek changed into pro-natural val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