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close

본 논문은 순한문체가 아닌 비한문체의 발생요인과 의미를 논하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 7세기 초의 소위「推古朝遺文」에 비한문적인 표현이, 한국의 경우, 고구려는 5세기 말, 신라는 6세기 초부터 금석문에 비한문적인 표현이 보인다. 이에 대한 한국의 기존연구는, 비한문체를 순한문체로 발전하기 이전단계의 문체로 파악했다. 하지만 문자가 국가 내부에서 사용되기 이전의「外部文字」(대외적 문자)가 모두 순한문이었듯이 순한문은 비한문이 발전한 문체가 아니다. 그것은 같은 한자문화권에 속해 있던 일본의「推古朝遺文」의 사료비판에서 알 수 있듯이 비한문체가 보이기 시작하는 7세기 후반까지의 모든 자료가 한문체였던 것으로도 반증된다. 그렇다면 비한문이 사용되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여기서는 비한문을, 한국과 같은 어순을 가지고 있는 일본이, 자국과 어순이 다른 한자를 이용하여 국가를 운영하기 시작하는 7세기 후반에、한문을 일본어의 언어체계에 맞춰 훈독한 결과로 파악하고 있듯이, 한국에서의 비한문 역시 훈독의 결과물로 파악하고자 한다. 지금까지는 설총이 행한「訓解」가 후세의「구역인왕경」에서 발견되는 것과 같은 것인지, 7세기 후반과 14세기라는 시간적인 격차로 인해 확언할 수 없었으나, 근래에 발견된 불전에 보이는 석독의 흔적과, 일본에서 발견된 설총의 부친 원효에 의한 訓讀資料인 8세기 초의 大谷大學의 서사본判比量論로 인해, 훈독은 자료면에서 7세기 후반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이렇듯 한국에 있어서의 비한문 역시, 문자체계가 다른 한문을 한국의 어순에 맞춰 훈독한 결과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