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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군을 진압하기 위한 1894년의 淸兵 請援은 동시에 일본의 출병을 야기시켜 조선이 청・일 양국군의 각축장이 됨으로서 한국 근대사의 굴절이 시작되었다고 말해도 무방할 것이다. 이에 필자는 淸兵 請援이 이루어졌던 근본 배경을 天津條約에 따른 撤兵으로 조선 내에서의 세력 확장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宗主國적 입장을 되찾으려는 淸의 노력과, 弊政 개혁을 주장하는 동학교도들의 요구 속에 弊政의 원인 제공자였던 척족 세도가들의 기득권 유지를 위한 이해관계의 합치 결과라는 관점에서 문제에 접근하였다.


1894年, 朝鮮政府借用淸兵以平定東學農民叛亂軍, 從此韓國成爲淸․日兩國的對立場地, 導致近代韓國的悲劇. 作者以這種認識爲基礎加以分析借用淸兵的原因和背景, 尤其從朝鮮政府的實力人閔泳駿和駐韓淸朝總理交涉通商事宜袁世凱開始分析他們的思想和利害關係. 從這種分析, 我們可了解閔泳駿是爲了把持政權而請兵, 袁世凱是爲了加强淸朝對朝鮮的影響力而派兵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