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close

본고는 1950년대의 여성잡지에 나타난 계몽의지와 수치심의 관계를 고찰하였고 이는 다음과 같이 결론지을 수 있다. 첫째는 허례허식코드를 활용한 계몽이다. 유교사회의 특성상 축첩제가 500년 이상 유지되어 왔지만 여성의 입장에서 보면 남편이 다른 여자를 첩으로 취하는 것은 본처와 첩 양편에 여성 억압적인 폐습이었다. 필자와 독자들은 이에 문제를 제기하고 여러 방면에서 수치심을 자극하여 축첩제는 공식적으로 폐지되었다. 마치 800년 동안이나 지속되었던 중국의 전족이 한 세대, 약 40년 만에 폐지되었던 것과 같다. 둘째는 타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수치심과 계몽의 관계이다. 자기 주관 보다는 외부의 시선을 의식한 계몽으로 볼 수 있다. 기독교적 세계관에 바탕을 둔 서구인들이 한국의 무속신앙을 원시인의 토속종교처럼 취급하자 한국인은 부끄러움을 느끼고, 선진화를 추구하면서 기와집을 만들고 길을 닦고 아파트를 만드는 과정에서 한국적인 것들을 없애고 무속과 미신 등을 축출하였다. 문제는 타자의 시선을 의식하는 과정에서 서양의 것을 '정전화'하면서 한국적인 것을 없애 버렸다는 데 있다.


The two aspects of sense of shame mentioned on women's writing in the mid 20th century has a result as follows. The first, the facts which concubinage is gone out of use in Korea is the applied shame-code example positively. It is like that foot binding lasted for 800 years in China, had brought the good effect, which is the fact cruel practice had abolished in 40 years. Korean could not have a feeling of self-existence against the Western civilization and the facts that western doesn't keep a mistress. They write on them continuously so the concubine is disused. We could call this into a kind of morals revolution in the way of Appiah. The second, there is a sense of shame lack of self-existence. It's a situation that an exorcism disappeared and restored, without self-management or independence and conscious other's eyes that is a shame of flunky-ism. Because they had other eyes as the source of shame, they had become colonialized. They identified their honor with other's honor, so they admired other's honor at last. They cared other's eyes. in this process, they eliminated the shame of truth that they didn't over come or want to adm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