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close

이러하다. 판소리가 과거의 문화 유산이라고 해서 그 기원을 밝히는 실체론의 성과를 존중하되 고증주의를 벗어나 판소리가 펼치고 있는 장르적언어적 자장에 대한 관심이 요구된다는 것, 그리고 서사론의 정치한 이론적 설명에만 의존하지 말고 대신 이를 바탕으로 서술자의 태도와 어조, 인물과 사건에 대한 거리 조정에 담긴 문화적 의미에 눈을 주자는 것, 마지막으로 판소리의 독법을 계층적 시각에서 탈피하여 인간론으로 확장해 보자는 것이다.그러나 이러한 대안적 패러다임이라고 해서 유일하고 절대적인 위치를 가져야 한다고 강변하는 것은 아니다. 연구 방법이나 시각은 다양하면 다양할수록 풍성한 논의를 이끌어낼 수 있고, 또 그렇게 되어야 할 것이다. 다만 어느 한쪽으로 편향되지 않고 연구 방법과 시각이 다양화될 수 있는 가능성으로 제시해 본 것으로 이해되길 바란다. 그리고 이것이 크리시나의 수레를 조금이라도 조종해 보려는 한 시도일 수 있다고 본다.판소리 연구는 그 어떤 장르보다 그간에 축적된 연구사가 많아서 이상의 세 가지 패러다임으로 모두를 포괄할 수 없었다. 다만 필자가 개인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일별이라도 해 보았던 논의를 중심으로 개괄적으로 살펴본 것이다. 자연스럽게 연구사적으로 매우 중차대한 문제이면서도 본 연구에서 제외된 논의도 있다.그 대표적인 것이 판소리의 현대화와 관련된 문제이다. 그러나 논의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제시한 대안적 연구 방향은 모두 현대화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판소리의 공감대가 넓지 않고서는 판소리의 저변 확대는 무망한 일이고, 판소리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인간론적 진실이 풍부하면 풍부할수록 공감대는 넓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원칙은 현대의 다양한 매체를 통해 새로운 장르를 창출할 경우에도 견지되어야 할 것이다. 매체의 새로움과 이를 활용한 장르의 새로움은 꾸준히 추구되어야 마땅하지만, 그 자체가 판소리의 생명력을 보장해 주지는 못하기 때문이다.또 하나 오늘날 생태론이나 여성주의 시각의 적극적인 도입도 환영할 만한 일이다. 다만 이러한 연구 방법도 거시적으로 인간이 추구해야 할 공동체의 이상을 실현하는 방안으로서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인물과 사건을 한 축과 다른 축의 대립 구도로 읽어낸다면 계층론적 시각이 지닌 위험을 고스란히 안게 될 수 있다.문학 연구가 인문학에 귀속되는 이유는 여러 가지일 수 있다. 人文을 축자적으로 해석하면 인간이 쓴 글 혹은 남긴 글이라 하겠으며, 조금 더 확장하면 인간의 모든 언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이 더 넓어지면 인간의 문화라는 의미가 된다. 그런데 인문의 ‘文’이 실은 ‘紋’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왜 문학이 필연적으로 인문학일 수밖에 없는지를 확연하게 알 수 있다. 인문학이란 결국 인간의 삶의 무늬를 탐구한다는 것이고, 문학이야말로 인간의 무늬를 가장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하고 깨달은 것이다.文[text]은 紋[texture]의 한 종류이거나 표상에 불과하다. 그러니 텍스트 그 자체에 함몰되지 않고 그 텍스트가 그려내는 인간의 삶, 그 삶의 무늬가 표상하는 바가 무엇인가를 통찰하는 안목이 요구된다는 것이 이 글의 대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