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close

한국 종교사상 최초의 관제신앙단체는 1872년에 최성환 등이 조직한 선음즐교이다. 이 교단에서는 문창제군과 부우제군도 믿었다. 또 이들은 중국에서 전래된 관우성적도지, 중향집, 각세진경, 명성경, 삼성보전, 과화존신 등도 공부했다. 그러나 선음즐교는 당대에 잠시 부흥했다가 소멸되었다.그 후 한국 신종교인 증산교는 창시자 증산 강일순(1871∼1909)을 옥황상제 또는 미륵불의 화신으로 믿었다. 증산교인들은 관제가 증산상제를 호위한다고 믿었으며, 그들이 수련할 때 보호해 주는 중요한 신격으로도 숭배했다. 증산교인들이 수련할 때 외우는 오주에는 관우가 만력 42년(1614)에 중국 황실에서 받은 ‘삼계해마대제신위원진천존관성제군’이라는 시호가 들어 있다. 특히 증산은 1909년 2월에 운장주를 지어 제자들에게 가르쳤는데, 증산교인들이 의례를 행할 때나 수련할 때 항상 외우는 중요한 주문이다. 1920년에 설립한 관성교는 이전에 개인적으로 관제를 숭배하던 사람이나 무당들을 신도로 규합했다. 이들은 1602년에 서울 동대문 근처에 창건된 동관왕묘에 본부를 두고 포교했다. 신도들은 관제를 군신, 병마퇴치신, 아들을 점지해 주는 신, 상업신 등으로 믿었다. 그러나 관성교는 1973년 한국 정부에서 동묘를 공원으로 지정하자 급격히 쇠락해 없어졌다.초기 관성교 신자였던 이승여(1874∼1934)가 창립한 금강대도는 1960년대 후반까지도 관성제군보고를 외웠고, 관제와 노자를 모셨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창교주를 미륵불로 신앙하여 현재는 관제신앙의 잔영만 남아있는 실정이다.한때 금강대도의 신도였던 김진하(1903∼1962)가 1945년 천지신명께 기도하던 중 하늘에서 경문을 받아 무량천도를 창립했다. 초기에는 관제신앙이 중심이었지만, 후대에 이르러 점차 천부천황과 태을천모라는 최고신격을 믿는 신앙으로 변했다. 이 교단에서는 1990년대 초에 관제의 소상을 없앴다. 한편 나진홍(1941∼)이 1984년에 창립한 미륵대도는 관제를 창조주 천지님과 구세주 미륵불을 수호하는 정법신장으로 믿는다. 이 교단에는 관제제향일 의례가 있다.한국 관제신앙의 특성은 중국에서처럼 관제를 재신으로 모시지 않는다는 점이다. 관제를 최고신을 호위하는 신이나 수련자를 보호하는 신으로만 믿는다. 현재 증산교는 관제에 관한 주문은 외우지만, 독자적인 관제에 대한 의례는 없다. 관제에 대한 의례가 남아 있는 교단은 최근에 세워진 미륵대도가 유일하다. 그리고 문창제군과 부우제군에 대한 신앙이 일시적으로 있었지만, 현재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리고 한국 종교에서는 관제만 신앙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교단의 다양한 신격과 함께 신앙하는데, 여기서 한국 종교의 통합주의적 특성이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