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close

이 연구에서 관심을 가졌던 것은 물레방아의 구체적인 건립과정과 이를 주도해 갔던 주체들이 누구인가 하는 문제였다. 이 같은 문제는 精작업이 가지는 일상생활사의 의미뿐만 아니라 미곡의 상품화, 새로운 세력의 성장 가능성 등과 관련한 사회경제사적인 측면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우리는 이 같은 문제에 대해 구체적인 연구성과를 거의 가지지 못한 실정이다. 조선시대의 精用具로는 절구, 디딜방아, 물레방아, 그리고 연자매 등이 있었다. 물레방아는 자료상에서 水砧 혹은 水, 水 등으로 표기되어 나타나는데 당시로서는 생산성과 경제성이 가장 높은 용정용구였다.구체적인 고문서 자료를 통해 물레방아의 건립에는 많은 노동력과 物力이 필요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것은 건립과정에서 뿐만 아니라 이후 빈번하게 행해지는 보수와 수리 시에도 마찬가지였다. 이 같은 사정에서 물레방아의 매매가가 2천 냥을 넘기도 하였다. 따라서 19세기 물레방아의 건립은 지주 혹은 토호적인 기반에서 가능하였을 것이다. 고문서 상에서는 승려, 촌민 등 하층민이 물레방아의 건립 주체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이들은 노동력과 物力의 한계뿐만 아니라 양반지주층으로부터의 방해를 극복하지 못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양반들은 물레방아의 건립에 필요한 인근의 山林川澤을 독점하고 있었고, 물레방아의 주된 고객 또한 양반지주층이었다는 점 때문이다.양반가의 고문서 자료는 구체적이기는 하지만 일반적인 사정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이러한 사정에서 ≪光武量案≫(1900)에 기재된 主와 垈主의 농지소유 등을 검토해 보았다. 量案상의 용주는 지주적인 존재도 있었지만 일부는 無田民이거나 零細農의 규모를 벗어나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무전민이나 영세농이 물레방아의 실질적인 소유주였던 것으로는 생각되지 않는다. 이들은 대리인에 불과하였을 것이다. 이러한 사정은 主와 垈主의 가옥과 전답의 소유상황을 통해서 부분적으로나마 그 개연성을 추측해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 같은 문제는 더 많은 검토를 필요로 한다.


The Construction Process of Water Mills and its Leader in the 19th CenturyChung JinyoungThe main focus of this study is what the specific construction process of water mills was like and who led the process. Problems like these convey important meanings not only because of the effect of polishing rice on everyday life but also because of the socio-economic aspect related with the production of rice on a commercial scale and the possible appearance of new powers. However, we have not had specific findings about these matt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