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close

칸트 이전의 사유방식으로 회귀하려 했던 화이트헤드의 시도는 칸트의 토대 위에 일관된 선험철학을 구축하려 한 후설의 관심과 명백히 양립하기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들은 근본적으로 데카르트적 성찰에서 첫 실마리를 발견했다는 기본적으로 유사한 공통점이 있다. 즉 이들은 공히 ‘주관주의적 편견’을 갖고 있었던 셈이다. 그리고 구체적 경험에 대한 기술에서 전제되는 이 ‘주관주의적 편견’은 양자를, 인간의 경험에 대한 현상학적 기술에서 단자론적 존재이해로 이끌었다. 여기서 전통 실체철학의 근본전제들, 즉 자기충족적 실체, 이들 간의 외적 관계, 그리고 이로부터 자연스럽게 도출되었던 주체와 객체의 단순대립 같은 전제들이 폐기된다. 과정철학에서 주체는 객체적 여건의 장 속에 있는 파악적 통일로서 존립하며, 현상학에서 인간의식은 지향적 장의 통일로서 존립한다. 물론 차이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특히 화이트헤드만 갖고 있는 범주관주의가 그것이다. 그러나 이 차이는 감정과 지향성의 어떤 형식을, 메를로-퐁티가 시사하듯이 비인간적인 존재들에 귀속시킬 경우 상당히 완화된다. 따라서 메를로-퐁티의 제안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경우, 그는 화이트헤드와 함께 자연을 이분화(bifurcation)하는 것에 반대하고 기꺼이 지향성을 파악과 마찬가지로 존재이해의 진정한 축으로 삼으려 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역으로 이것이 설득력이 있다면 화이트헤드의 과정철학을 20세기 주류철학의 주요이념에서 완전히 동떨어진 것으로 간주해 도외시하는 일반적 시각은 부당하다고 말할 수 있다. 오히려 화이트헤드는 존재이해에 있어 대립이나 고립은 추상이며, 내적 관계의 그물망이 인간과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는 통찰을 범주적으로 체계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적어도 20세기 유럽철학의 기본이념 가운데 하나를 철저화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