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close

본드는 전후 영국 극작가들 중 가장 지속적으로 역사의 극화에 폭력의 이미지를 사용한 작가이다. 그의 모든 극에서 폭력이 인류의 생존에 위협이 됨을 일관되게 보여준 그는 비교적 후기극인 ꡔ전쟁극ꡕ 3부작에서 미래의 핵전쟁을 통한 역사의 종말을 극화함으로써 폭력의 역사의 귀결점을 보여준다. 이 극이 제시하는 사회는 전쟁과 폭력의 일상사가 되어 규범이 되어버린 사회이다. 이 3부작은 특히 폭력의 주체가 사회에 의해 만들어지는 과정을 잘 보여줌으로써 인간의 폭력적 본성은 타고난다는 관념을 배격하고 인간의 주체성이 역사의 산물이며 역사의 장에서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에 폭력적 주체성은 다른 성격의 주체성으로 새로이 만들어 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폭력 행위를 사회 규범의 수행으로 극화하여 저항적 수행 행위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1부와 3부에 나타난 군인을 통해 무고한 시민을 살해하도록 강요하는 사회는 근대 자본주의 사회의 전형을 제시하고 이러한 사회에서 양민이 군인으로 변화하여 양민을 살인하는 폭력의 과정을 비판한다. 개인이 사회에서 폭력적 주체로 훈련되지만 본드는 모순적 순간에 이르면 훈련에 허점이 생기고 주체성의 분열을 가져오게 된다고 본다. 이 3부작에서 군인인 아들이 살인 명령을 받고 귀향하지만 이웃 양민을 죽이지 못하고 대신 아버지나 동생을 죽이게 된다. 이 “비정상적” 선택은 비록 살해 임무는 수행하지만 폭력의 목적인 사회 질서 유지를 뒤엎는 전복적 수행이라 할 수 있다. 본드는 핵전쟁 후의 새로운 사회가 아들의 전복적 수행을 모델로 하여 비록 과거 역사를 바탕으로 하여 생존하지만 저항적 반복의 방법을 추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역사와의 단절이 불가능하다면 역사를 반복하지만 ‘틀린 반복’이라는 방식을 취하여 역사의 규범을 저항적으로 수행하고 새로운 역사 만들기의 가능성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