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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영국의 전후 제2세대 정치 극작가인 하워드 브렌튼의 1984년 작품인 ꡔ피묻은 시ꡕ에 내재하는 다양한 갈등 구조의 층들에 대한 연구이다. 낭만주의 시인 쉘리의 삶과 예술에 대한 재구성인 이 작품은, 대처주의로 대변되는 1980년대의 영국의 우익 보수화라는 정치적 풍토와 노동자 계층 관객을 수용했던 극장들의 점진적인 와해라는 연극적 환경 속에서, (특히 중산층) 관객과의 새로운 관계를 맺고자하는 작가의 정치적 필요성과 욕망으로부터 산출되었다. 영국에서 계급투쟁이 절정에 이르렀던 1970년대 중반에 생산된 극들의 전매특허라 할 수 있는, 관객의 감정에 대한 직접적인 호소인 선전 선동극의 형식에서 벗어나, 브렌튼은 이 극에서 현실과 이상에 대한 다양하고 쉽게 용해될 수 없는 갈등구조 속으로 관객들을 인도한다. 선동극의 지배적인 기조를 이루는 지배자와 피지배자간의 갈등과 충돌은 극 초반부터 도입되지만 그 발전이 자제되어있고 역사와 정치에 대한 거대한 담론들은 서서히 극의 주변부로 밀려난다. 강조되는 것은 혁명을 꿈꾸는 자들의 치열하지만 분열된 내면의 삶이다. 실질적으로 쉘리의 삶과 예술은 영국의 급진적인 좌파 운동의 발전에 있어 상당한 의미를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브렌튼이 강조하는 쉘리의 모습은 현실과 이상의 간극 속에서 찢겨져나간 추방자로서의 모습이다. 브렌튼이 인용하는 그의 시는 더 이상 군중들을 모을 수도 없고 그들에게 영감을 줄 수도 없는, 오직 자신의 친구와 애인들에게만 암송되는 무력한 정치적 무기일 뿐이다. 쉘리의 자유 연애(free love) 운동에 동참하는 바이런에게는 쉘리의 시는 직접적인 혁명적 행동에 있어 거추장스러운 방해물이 된다. 더욱이 쉘리의 이상적인 삶에 대한 욕망은 그의 연인이자 그의 자유 연애론의 희생자로 등장하는 메리의 지극히 현실적인 고통을 그 근간으로 하고 있다. 극중에서 쉘리의 시는 메리의 산문과 그 대칭선상에 놓여 있다. 예술과 정치를 둘러싼 등장인물들의 끊임없는 충돌은 관객들로 하여금 기존의 선전극을 넘어서 감정과 이성, 사고와 행위, 인식과 표현에 대한 쉽게 해결될 수 없는 문제들을 직면하게 만든다. 브렌튼의 극에서 진정한 변증법적 관계는 실패한 혁명가들간이 아니라 극과 이를 지켜보는 관객 사이에 이루어진다. 극이 끝나는 바로 그 자리에서 관객들은 이제 나름대로 공연을 해야하는 하나의 배우로서 다시 새로운 역할을 맡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