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close

빅토리아 시대의 두 작가인 오스카 와일드와 알프레드 하우스만은 두 사람 모두 동성애의 경향을 지니고 있었지만 판이한 삶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재판과 투옥 그리고 망명으로 점철된 와일드의 극적인 요소가 넘치는 짧은 삶은 후배작가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소재가 되어왔지만, 침묵과 명예로 일관된 하우스만의 삶은 이와는 대조적으로 세인의 눈길조차 끌지 못하는 평범한 삶으로 알려졌었다. 그러나 탐 스토파드는 이러한 표면적 일상 속에 감춰진 하우스만의 치열한 내적 격정의 기록인 일기 속에서 “두 사람”으로써 살아야 했던 하우스만의 생애에서 극적인 요소를 발견하고 ꡔ사랑의 발명ꡕ속에서 그의 삶을 재구성 (발명)해내고 있다. 스토파드는 1998년에 행해졌던 한 인터뷰에서 치욕과 비참함으로 얼룩진 와일드의 인생이 존경과 찬사를 받으며 세상을 떠났던 하우스만의 삶보다는 성공한 인생이었다는 견해를 피력한 바 있다. 하우스만의 삶이 적어도 정서적인 면에서 볼 때에는 실패한 인생이라는 것이다. ꡔ사랑의 발명ꡕ 속에서 와일드는 스토파드의 대변인처럼 하우스만의 삶이 위선과 타협의 껍질뿐인 공허한 인생으로 매도하고, 작품은 하우스만의 삶이 그의 고전연구에 대한 열정과 헌신 속에서 상상적 허구와 유희로 빚어진 “발명된” 사랑의 삶으로서 묘사되고 있다. 그러나 와일드가 궁극적으로는 사랑의 본질을 이 상상적 허구와 유희를 통한 “발명”의 개념에 입각하여 정의를 내림으로써 그는 하우스만의 삶을 비난함과 동시에 인정하는 모순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러한 “이중 초점”의 접근은 스토파드의 작품세계에서는 자주 등장하는 하나의 모티브로서 하우스만의 이미지에도 적용이 되어 시인과 학자라는 상반된 두 직업을 가진 하우스만이 내면에는 동성애적 열정을 죽을 때까지 친구 잭슨에게 지닐 수 밖에 없었지만 사회적으로는 존경받는 빅토리아인 이라는 또 하나의 모순된 두 모습을 지닌 인물로서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이 논문은, 작품 속에서 하우스만이 옥스퍼드대학 재학시절 동창친구인 잭슨에 대한 사랑이 결코 성사될 수 없음으로 해서 그에게 라깡의 오브제 아의 기능을 발휘하고 있다는 전제 하에, 바로 스토파드의 상상적 허구와 유희의 산물인 하우스만의 사랑의 “발명”의 성격을 규명해 보려고 하고 있다. 하우스만은 친구 잭슨이 자신의 동성애적 사랑을 거부하고 빅토리아시대 사회의 도덕적 관행 때문에 잭슨에 대한 열정을 고대 그리스와 로마시대에 쓰여진 연애시에다 투사한다. 따라서 저명한 고전학자인 하우스만에게 억압된 동성애적 열정은 역설적으로 고전연구에 대한 하나의 자극제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억압된 열정의 침묵 속에서 하우스만에게 이 연애시와 자신의 시적 창작물은 그에게 “두 사람”으로써 살아가야 했던 상반된 내적 현실과 외적 현실 사이의 중개지대에서 위니코트가 주장하는 “과도기적 대상물” 역할을 함으로써 빅토리아시대의 사회가 그에게 요구하는 고통을 견디어내고 스토아적 극기주의자의 삶의 자세를 죽음 앞에서 지니도록 하고 있다. 결국, ꡔ사랑의 발명ꡕ은 하우스만의 삶과 와일드의 자기 고백적 선언에서 비추어볼 때 사랑의 “발명”이 상상적 허구와 유희의 산물임을 시사하고 있다. 아울러 “발명”이라는 어휘가 함축하고 있는 다의적 암시와 스토파드 특유의 패러디적 기법으로 작가와 주인공 및 관객/독자 모두를 하나의 운명 공동체로 묶어 놓고 있다. 그 운명은 이들이 다름 아닌 바로 창작과 비평이라는 영원한 이중적 게임의 참여자들이라는 것이다. 시인과 학자라는 하우스만의 직업이 무엇보다 이점을 잘 드러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