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close

블랑쇼의 문학과 철학에 대한 성찰의 중심에 죽음이 놓여 있다. 그에게서 죽음의 경험은 바깥의 경험과 다른 것이 아니다. 서양의 사유(헤겔, 니체, 하이데거)에서 죽음은 인간 스스로 자신의 가능성과 자유를 결정적으로 시험하고 증명하는 최종심급이다. 다시 말해 죽음은 최고로 지배하기 어려운 자연, 최고로 포착하기 힘든 현상이며, 죽음에 대한 지배는 자연에 대한 자아의 궁극적 승리를, 모든 현상을 완벽하게 자신의 관리영역에 두는 자아의 의미부여능력의 절대성을 의미한다. 그러한 죽음에 대한 이해를 하이데거는 죽음으로 앞서 달려가봄을 나의 본래적 실존을 위한 최고의 가능성이라고 해석하였다. 그러나 블랑쇼에게서 죽음으로의 접근은 나의 최고의 가능성과, 나의 본래성과 마주하게 하는 계기라기보다는 오히려 나의 결정적 불가능성 또는 비동일성에 대한 시련의 경험이다. 블랑쇼는 죽음의 경험, 바깥의 경험이 결국 세계의 상실과 자아의 파기의 경험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그러나 그것은 허무주의적으로 실존의 어두운 측면으로 돌아선 인간의 한계를 지적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블랑쇼의 죽음에 대한 성찰은 죽음의 경험에서 인간 공동의 영역이, 공유할 수 있는 하나의 실존적 조건으로서의 함께 있음(tre-ensemble)이 발견된다는 것을 말한다. 즉 죽음의 경험이 급진적 양태의 함께 있음과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계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