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close

본고를 쓰게된 동기는 상당부분 金台俊의 『朝鮮小說史』에 근거하고 있음을 먼저 밝힌다. 일찍이 김태준은 한국 소설의 출현에 있어 고려불교문예가 지대한 영향을 준 것으로 파악한 적이 있다. 필자는 특히 그가 구체적 작품으로 적시한 <朋學同知傳>, <普德閣氏傳>을 주목하고 있었는데, 이 작품들의 실상과 함께 그가 왜 이들을 고려 불교문예의 대표적 사례로 적시했는지 의아심을 떨칠 수 없었다. 알다시피 김태준은 소설사연구의 선구자로서 열악한 연구환경에서 놀랄만한 혜안으로 소설사의 대략적 구조를 획정하였다. 그러나 개척자가 그렇듯 논의 중 오류와 착오가 적지 않았음이 후학들에 의해 확인되었거니와 고려시기의 소설로 지목한 <붕학동지전>과 <보덕각시전> 역시 실체부터가 불분명했다. 이에 대해 여러 문헌과의 비교 및 정황을 들어 필자는 <朋學同知傳>은 <明學同知傳>의 잘못이고 <보덕각시전>과 함께 사찰연기설화에 속함을 알았다. 다시말해, <명학동지전>은 금강산 靈源庵 연기설화로서 混元(1853-1889)의 『金剛錄』에 소개된 영원암 연기설화에서 증거하고 있는 『古蹟』이나 그 이본에 해당된다고 보았다. 이외 구전적 자료도 여럿 확인되는 바, 문헌설화로서 혼원의 기록은 창작연대와 함께 영원암에 문헌으로 소장되었음을 증거해주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한편 <보덕각시전>의 경우, 『梵宇攷』, 『金剛山楡岾寺本末寺誌』 등 보덕 등장 설화를 각 편으로 인정할 수 있고, 보다 다양한 전승적 기록에서 보덕굴 연기설화가 신라이래 강한 전승력을 유지해온 이야기임이 드러났다. 다만 위의 지적 사항들을 『조선소설사』에서 범하고 있는 오류라고 하더라도 그것과 별도로 이들을 고려시기의 소설로 예거한 이면의 까닭마저 논외로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보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찰연기설화의 소설성 여부를 타진하는데 주력했다.사찰연기설화라면 특정 사찰의 흥망성쇠, 그 가운데서도 창사에 얽힌 영험, 그 후대로 이어지는 신이한 감응을 수습하여 거대한 사찰유래담을 엮어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두 설화는 삼생에 걸친 인간의 윤회전생이나 부처와 나를 넘나는 변신담을 통해 업의 의미, 삶과 본질과 진정한 깨우침이 무엇인가 하는 진중한 불교적 주제를 형상화하는 데 힘을 기울이고 있다. 물론 삽화간의 짜임새가 엉성하고 사건 위주의 전개, 흥미를 의식한 불교적 공간의 빈번한 대응 등에서 아직 설화적 성격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지만 불교 교리를 통한 주제미학에 성숙한 안목을 보이고 있어 보기에 따라서는 설화의 경계를 넘어 소설의 영역에 든다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소설의 기원이 불투명한 만큼 전사로서 고려시기의 서사적 위상을 자리매김해야 하는 것은 여전히 당위적 과제로 남는다. 특히 사찰연기설화 중에는 소설성을 풍성하게 담지하고 있는 작품이 적지 않은 만큼 이에 대한 재조명이 시급히 따라야 할 것이다. 본고는 단지 하나의 시론에 불과할 뿐, 이에 대한 보다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연구가 이루어져야 함은 물론이다.


The study on romantic illumination in originate narrative of temple; Focused on what so called Myeonghak dongji jon and Bodeok gaksi j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