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close

이 논문에서는 16세기 후반기에 창작된 임제(林悌, 1549∼1587)의 <수성지>를 대상으로, 이 작품이 17세기 소설사의 전환을 예고하는 징후적 의미를 내재하고 있음을 논증했다.이 작업은 두 가지 방향에서 이루어졌다. 하나는 <수성지>의 텍스트 분석을 통해 역사(歷史)와 천도(天道)의 관계에 대한 전통적이면서 이념적인 역사철학적 질문에 대한 임제의 생각을 밝히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임제의 <수성지>에서 포착되는 인식론의 지평과 김시습(金時習, 1435∼1493)의 『금오신화』에서 포착되는 인식론의 지평은 질적으로 차원을 달리한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그 내용의 핵심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1) 임제와 동시대를 살았던 대부분의 성리학적 지식인들은 역사는 천도를 구현한다고 믿었지만, 임제는 이를 회의했다. <수성지>에서 천도를 욕망하는 인물인 천군(天君)이 근심하는 것은 욕망의 출구가 현실에 닫혀져 있기 때문이며, 그렇기에 '근심'을 '술'로 해소하는 역설의 미학이 성립될 수 있었다.(2) 현실은 욕망의 출구가 봉쇄되어 있으므로 현실과 다른 차원의 존재적 전이를 통해 욕망의 출구를 마련하고자 하는 생각이 바로 『금오신화』의 인식론이며 세계관이다. 그렇지만 <수성지>에서는 현실 바깥의 욕망의 통로를 상상하지 않았다. 김시습의 『금오신화』에서 보이는 관념적 상상의 통로가 엄연히 욕망을 배출하는 출구였음에도 불구하고, 임제는 이를 출구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는 현실만을 욕망의 출구로 인식하는, 천도와 화해불가능한 대립 속에서 등장하는 진정한 의미의 소설적 주체의 성립을 예고하는 인식론적 전환의 한 표징이라 할 수 있다.


Suseongji and the indications of transition in the history of novel in the late 16th centu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