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close

익종은 최고 통치자의 입장에서 궁중예술인 정재를 주도했고, 다수의 악장까지 창작했다. 그가 지은 악장으로 지금까지 확인된 것만 50여 작품에 이른다. 약관의 나이에 대리청정을 시작하여 요절하기까지 짧은 기간 동안 그가 한 일 가운데 두드러진 것이 부왕과 모후를 위한 진연과 진찬의례였다. 그는 그런 의식들을 주관했고 그에 필요한 정재를 정비했으며 악장을 창작했다. 시경시를 집구하거나 앞 시대 악장들로부터 모티프를 빌어오는 방법으로 제향악장을 창작했으며, 연향악장을 짓기 위해 중국의 악무들과 앞 시대의 정재들로부터 아이디어를 빌거나 전사의 방법을 사용하기도 했다. 특히 그가 가곡을 정재의 음악이나 악장으로 도입한 점은 획기적인 일이었다. 이것은 민간의 노래나 음악이 궁중의 예술과 만나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단서이기도 하다. 그것은 익종 자신이 민간의 음악에 조예가 깊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제향악장을 통해서 표면적으로는 존주의식을, 이면적으로는 존왕의식을 통한 왕권회복의 의지를 피력하고자 했다. 그는 국가적인 제의들을 통해 두 차례의 전쟁을 거치면서 이반된 민심을 한 데로 모으고, 지배세력의 입지를 계속 유지할 수 있다고 믿었다. 연향악장을 통해서도 임금을 정점으로 이루어지는 지배질서를 공고히 하고자 한 익종의 의지를 읽어낼 수 있다. 이와 같이 익종은 제작 방법이나 실용적 국면, 의미나 주제의식의 측면에서 왕조시대 악장의 전통적 패러다임을 교체한 존재로 기억되어야 할 것이다.


A Study on Ikjong's Akj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