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close

18·19세기 청과의 활발한 교류 속에 청의 학문과 문화가 국내로 유입되는 과정에서 고증학풍은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여 성행하게 되며 소설 역시 博極群書의 資로서 의의를 확보하여 문인들의 일상적 독서물로 자리잡았다. 박학다식한 지식 수준과 문장력을 갖춘 문인들은 중국 소설과 일정 수준에 오른 국내의 작품들을 접한 결과 자연스럽게 노련한 기술이 요구되는 중장편의 한문소설을 창작할 수 있었다. 이들은 신간 서적을 선호하면서 소설 역시 新書를 즐겨 읽었는데, 새로운 것에 대한 추구는 舊套를 지양하고 자신의 소설을 新語로 채우고자 하는 소설 작가들의 욕망에 촉매제가 되었다. 이에 新語는 당시 소설 작가들이 소설 속에서 만들고자 했던 새로운 것에 대한 약속된 표현으로 사용되었다. 또 '新語'의 잦은 사용은 소설 작가들에게 이러한 욕망이 매우 컸음을 짐작하게 한다. 당시 고증학풍은 소설을 박극군서의 실현 場으로 활용하도록 했다. 백과사전적 지식을 활용하고 있는 소설들은 이러한 요소가 참신한 면[新語]으로 독자들에게 다가가기를 기대했다. 이는 고증학의 성장과 더불어 위상이 제고된 소설이 작품 안에 당대의 학풍을 반영한 것이기 때문에 당시 독자들에게 나름의 미감을 전달할 수 있었다.


The Change of Academic features and the Trend of Novel in 18th and 19th Century